"잘 연결되어 있어야 해."

우리는 서로의 우주니까

by Haein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해. 휴대전화 충전할 때를 생각해 봐.

네가 잘 충전하려면, 케이블이 안정적으로 잘 꽂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충전 케이블이 막 흔들리면 전기가 잘 들어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너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봐. 명상을 하고 심호흡을 해 봐.”



아메드가 귀국하기 이틀 전, 떠나기 전에는 비자 문제를 해결해서 입국하게 하는 게 지상과제였다. 아메드와 나는 코이카,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 대학 당국, 출입국 관리소, 하물며 지도 교수들에게까지 전화를 하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우리로서는 석사과정이 끝나지 않았는데 날짜가 두 달 이상 남은 외국인 등록증을 반납해야 한다는 통보를 출국 열흘 전에서야 그룹 채팅룸에 공지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떠나는 공항에서 아무 문제 없이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공항에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 나는 우리가 보낸 메일에 일절 답이 없다가 떠나는 공항에서야 알려주는 조직의 행정담당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일을 그렇게 만든 몇몇 행정 담당자들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아메드는 그저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기로 했다. 나는 아메드의 순수한 기쁨과 감사에 단 한 방울의 찬물도 끼얹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게 우리 룰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는 태도를 고수하거나 우리가 우리의 상황과 요구사항을 담은 메일을 보냈을 때 ‘어떻게 이런 메일을 보낼 수 있느냐’며 발끈 한 당사자들이 있는 반면, 최선을 다해서 아메드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고 길을 제시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 대한 감사함만으로 마음에 남기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아메드가 이집트에서 머문 시간은 4주였는데 그동안 아메드는 직장에서 휴직(혹은 사직 처리)를 비롯해서 운전면허를 비롯해서 온갖 가족관계 서류를 정리해야 했다. 그 와중에 아메드는 탈장 수술을 했다. 내가 곁에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술을 한다니, 처음에는 얼마나 반대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메드는 한국에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초음파도 하지 않고 이 정도는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기억 때문인지 작은 수술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수술한 날,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내 불안증의 도진 까닭인지, 사랑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수술을 한 뒤 배에 붕대를 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메드를 보면 걱정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일단 이집트는 인구도 1억 가까이 되지만 땅덩어리도 컸다. 아메드는 카이로에 살았는데도 직장, 대사관, 병원 등 어딜 가려면 왕복 서너 시간은 기본이었고, 이집트의 서류 시스템은 21세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느렸다. 한국에서라면 온라인으로, 혹은 관공서에서 30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반나절, 일주일 이상 걸렸다. 며칠 전 아메드가 “나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음” 하고 보낸 사진에는 시골 작은 버스 정류소처럼 생긴 공간에 많은 사람이 보여 있었다.


“어디야?”

“관공서에서 스탬프 받으려면 기본 세 시간이야.”


나는 시간도 아깝고 무엇보다 수술을 받은 후 충분히 쉬지 못한 채로 동분서주하는 아메드가 염려되었다. 하지만 아메드는 천진난만하게 “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난 노력하는 내가 마음에 들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시간 뒤 긍정 마인드의 아메드도 대폭발하게 되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아메드는 “아악. 나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고 싶어!”라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창구에 도달했더니 담당 직원이 “당신이 원하는 서류는 다 떨어졌어요. 내일 다시 오세요.” 하고 말하더란다. 한국에서 컴플레인을 배운 아메드는 매니저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이집트에서는 그런 경우 경찰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상 가능한 답변. 매니저는 “그건 네 사정이고. 종이가 없는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하고 말했단다. 아아... 내가 대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집트에서 일상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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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가 이집트에 돌아간 지 3주가 넘어섰을 때, 불안증이 시작되었다. 두통이 시작되고 메스꺼움이 시작되었고 계속되는 증상은 바로 내가 죽을 병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두려움과 불안이 얼마나 늪같이 끈적하고 강력한지, 나는 오랜 시간 경험했다. 두려움과 불안이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일상의 느낌을 모두 칠흑같이 어두움 속으로 몰아가고 내 에너지를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려 삶의 경이와 빛나는 순간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지를 나는 너무 잘 알았다. 그것이 아메드와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산책과 명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번 시작되면 그것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것들에 발목 잡혀 살아왔다. 오랜 시간 나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예술적이고 감성적이었으나 동시에 권위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안전하다고 경험해 보지 못했다. 우주가 나를 도와줄 것이며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불안했으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목적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사실은 있었으나 욕망을 드러낼 수 없었고)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아메드는 내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알았다. 신기하게도 말투나 행동에서 티가 나기도 전에 알았다. 처음에 나는 아메드가 아주 섬세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아메드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상태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예를 들면 학교 제출용 건강검진을 위해 동네의 중소 의원에 들렀을 때 담당 간호사가 “저희는 외국 이름으로 서류는 못 만들어드려요.”라고 했을 때 이미 “저 사람은 우리를 돕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나는 항상 “너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너의 느낌으로 속단하냐"라고 일축했지만. 우리가 건강보험공단에 들러 한국어로 이름을 바꾸고 갔을 때에도 그 담당 간호사는 두 번이라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절했고 마지막에 왜 안되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놀랍게도 “저희 선생님은 이걸 하고 싶지 않으세요.”였다. 이뿐 아니라 아메드가 사람에게 느끼는 직감은 언제가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서 “너는 사람 보는 눈은 없으면서 느낌은 왜 그렇게 정확하냐?"라고 놀리곤 했다.


그런 아메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갑자기 모든 전화를 화상으로 걸었다.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나를 깔깔깔 웃게 만들었다. 아메드는 걱정이나 슬픔을 잊게 하는 힘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소리 죽여서 웃던 나는 “아메드, 네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메드는


“그러게 표현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데 있잖아. 내가 너를 더 필요로 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말로 서로를 필요로 해. 우리는 정말 서로의 우주야.”


울컥 눈물이 났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나도 네 앞에서 잘 울잖아. 눈물을 참지 마. 그건 네 약이야.”

“안돼. 지하철이야.”

“오, 그래? 나도 길거린데. 그럼 같이 울자.”

그 말에 울컥하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평상시에는 철부지 어린아이 같고, 그래서 나는 늘 아메드에게 “너는 커다란 레트리버 같아.”라고 말했는데 나는 실제로 그를 그렇게 느꼈다. 그는 에고가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투명했고 감정을 감추지 못했고 세상 모든 것에 경탄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다시 삶을 경이롭게 느끼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하지만 가끔은 할아버지 같았다. 그는 두 시간 간격으로 화상 전화를 걸었다. 평상시라면 뭐 이렇게 자주 전화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불안증이 도진 상태였으므로 내 에너지를 바꿔주는 그의 전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지금은 얼굴을 보면서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있잖아.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서 네가 힘들면 내가 에너지를 불어놓고 내가 힘들면 네가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어. 그런데 네가 흔들리면 내가 너에게 아무리 에너지를 보내도 너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휴대전화 충전할 때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아무것도 하지 마록 그저 고요하게 머물러 있으면 돼. 그러면 내 에너지가 너에게 100% 흘러들어갈 수 있어.”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말하면 그것은 늘 말 이상의 힘을 전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답했다.


아메드가 오기까지 나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일하고 먹고 쉬고 산책하고 고요히 있겠다고 했다.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고. 생각 중독자였으므로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주인이 되지 않은 생각은 대체로 나를 삶의 신비에서 등 돌리게 했다. 나는 내 생각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내 느낌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내 깊은 두려움과 불안과 절연했다. 다시 온다고 해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남은 생을 온통 빛나는 순간을 경험하는데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게는 아메드가 있다. 그의 손을 잡으면 나는 금방 다시 빛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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