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사히 돌아왔고 나는 불안증을 앓기 시작했다.

by Haein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애가 탔다. 믿을 수 없게도 나이 서른넷의 그는 혼자 비행기 티켓을 끊고 비행기를 탄 게 처음이었다.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에는 장학금을 주는 K 재단이 모든 서류를 알아서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 그가 이집트로 돌아갈 때 공항에서 그렇게 긴장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애가 탔던 것은 그의 비자가 제대로 통과할지, 외국인 등록증에 문제가 없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분명히 이집트 당국에서 비자를 받았음에도 지난 두 달간의 마음고생 때문인지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긴장이 되었다. 비자 문제로 고생을 해서인지, 그는 언제나 "한국 여권은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왜 그 특권을 누리지 않냐?"라고 묻기도 했다. 그가 탄 사우디 에어 라인은 기체 불량 점검으로 네 시간이 넘는 연착을 알려오고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아메드를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기다림과 만남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공항이란 공간은 특별했다. 만남, 출발, 헤어짐, 기다림, 그 모든 것들이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 아메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지만 꽤 괜찮았다. 늦은 시간이라 인천 공항 입국 게이트는 두 개 정도만 열려 있었고 꽤 붐볐다. 가족들이, 연인들이, 사업 파트너들이 서로를 만나 공항을 떠났다. 한참을 더 기다린 끝에 아메드가 입국 게이트로 들어왔다.

그가 달려와서 나를 꼭 안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이제 어려운 고비들은 넘었구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박사 과정 지원 과정도, 비자 문제도, 가족 문제도, 이집트 회사 문제도 모두 정확한 때에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들이 주어졌다.

도착 후 아메드는 다시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여러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나도 할 수 있는 한 그를 도왔다. 아니 돕고 싶었다. 문제는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명인가 싶었다. 귀에서 고주파 돌고래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아메드가 귀국하기 한 달 전부터 생긴 증상이었는데 점점 심해져서 일상생활이 힘들 지경이 되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덜컥 겁이 났다. 큰 병은 아닐까. 그리고 겁이 나자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비인후과와 내과, 산부인과 등 할 수 있는 한 여러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다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고 어지럼증과 두통을 해결할 길이 없었다. 나는 MRI를 해야 하나, 이것은 무슨 병인가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머릿속에서 각종 시나리오가 판을 쳤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이기지 네이션은 최악의 것들이 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해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멈추지 않았다. 한 군데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으면 다른 곳이 이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과 어지러움, 메스꺼움이 나날이 점점 심해졌다. 어쩌다가 유명인 누구누구가 무슨 병이라더라라는 짧은 타이틀을 접하면 그게 내 일인가 싶었다. 그렇게 시름시름 몸과 마음을 앓다가 이명을 잘 본다는 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이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전에 받은 청력 검사지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그냥 돌아갈까 했지만 막상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진료라도 받자 싶었다. 다른 병원에서 받은 청력 검사지를 가지고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검사지와 나를 보더니, 무심코 던지듯이

"잘 먹고, 잘 쉬고, 생각이 나 걱정 줄여보세요. "

라고 말했다.

"이런 질병을 우리가 신경 쇄약성 병이라고 불러요. 마음이 너무 힘든데 어떤 증상으로 발현되고 그러면 그 증상에 더 집중하고 그러면 그게 강화되지요. 두통약을 처방받을 순 있는데 일시적이기도 하고 나중에 의존하게 됩니다. 가서 걱정거리를 해결하고 세 끼 잘 챙겨 먹고 잘 쉬세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사실은 '걱정거리를 해결하고 세 끼 잘 먹고 쉬라'는 말에 주저앉아서 울 뻔했다.

생각해 보니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아메드를 신경 쓰고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전혀 쉬지 못했다. 일하는 틈틈이 계속 무언가를 체크해야 했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게다가 아메드가 한국어를 못하니 모든 걸 옆에서 밀착 방어해야 했다. 아이를 돌보듯, 강아지를 돌보듯 말이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나왔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사실 삶에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잘 해결될 것으로 믿고 편하게 길을 찾으면 되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나도 처음 겪는 일이어서 나도 모르게 긴장했었다. 나도 모르게 아메드를 지켜야 한다고 혼자 다짐하고 버텼다.

혼자 있을 시간도 없었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카페에 혼자 앉아 모닝 페이지를 쓸 여력마저 없었다. 체력에 무리가 오리란 것도 너무나 잘 알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하고 싶지 않을 일들도 당장에 들어가는 돈이 많았으므로 무리해서 했다. 아메드와 나는 식성이 완전히 달랐으므로 편하게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메드의 식사를 준비하는 걸 포기하고 나를 위해 잘 먹어야 했는데 나는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돌이켜보니 정말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음식만 대강 먹었구나 싶었다. 이비인후과를 방문한 날, 집에 돌아온 나는 3일간 일정을 취소했다. 겨울잠 자는 곰처럼 잠을 잤다. 하지만 어지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귀에서는 계속 소리가 들렸고 일어나서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첫 학기, 아메드는 기숙사에 가겠다고 했다. 학교가 있는 대전까지 이사할 계획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촉박했다. 집을 내놓고 새 집을 구하는 것뿐 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일하고 살아온 내가 삶의 터전을 옮긴 뒤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당장의 계획이 없었고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아메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수업이 있는 대전에서, 그리고 목요일 밤부터 월요일까지는 서울에서 지내기로 했다. 학기 시작을 하루 앞둔 날 밤에 나는 자고 있는 아메드를 깨워서 말했다.

"아메드, 있잖아. 나는 아무래도 정신과 마음의 병인 것 같아.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증상이 없는 게 아니야. 실제 증상이 있어. 그런데 이 불안과 두려움에서 내가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나는 너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 네가 공부하는 동안 나를 염려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나는 아메드 앞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자가 깬 아메드는 한참 동안 나를 다독이더니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왔다.

"네가 걱정하는 걸 다 써봐."

울다 만 나는 펜을 잡고 쓰기 시작했다.

-내가 큰 병일까 봐 무섭다.

-네가 나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

-너를 돌볼 수 없을까 봐 두렵다. 네가 잘 먹고 잘 자고 너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이렇게 서너 가지를 써 내려가자 그걸 읽은 아메드는

"자, 그 아래에 내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어 봐."라고 말했다.

-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걸 멈춰야 해. 너는 건강해.

-나는 네가 건강하고 편안할 때 행복해.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너는 너를 돌봐야 해. 잘 먹고 잘 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야. 네 기준이나 생각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그러니 너는 너를 돌보도록 홰.

-나는 아주 건강해. 내가 대강 먹고 내 몸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신체를 유지할 수 있었겠어.

내가 다 받아 적 자 아메드는 그걸 침대 옆에 붙였다.

"이거 하루에 다섯 번씩 읽어. 이게 네 약이야. "

다음 날 아메드는 학기를 시작하기 위해 대전으로 갔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산책을 하고 명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한 달 넘게 사로잡혀 있던 불안에서 조금 벗어나는 게 느껴졌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불안증인 것 같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몸을 추슬러보겠다고 했다. 따스한 격려의 마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아메드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연습하려고 한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메드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메드는 내 염려보다 훨씬 깊고 강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다섯 번씩 벽에 붙은 아메드의 약을 읽는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를 멈춘다. 나는 건강하고 아메드는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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