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먹었는지 매일 궁금해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by Haein


엄마는 세상 쿨하고 정확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면 "아직은 괜찮다. 혼자 가는 게 편해"라고 잘라 말하는 스타일.

어려서부터 엄마는 내가 방에 들어가면 절대 먼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궁금한 게 있어도 먼저 묻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그게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엄마 외에 다른 엄마는 경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엄마는 '용건 없이' 통화를 하는 법이 없고 말이 길어지면 "말 너무 길다. 끊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때로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기 위해 용건을 만들어야 했다. 엄마의 건강, 집에 관한 궁금증, 디스크 치료 잘 하는 병원, 엄마에게 보낼 선물 등등 말이다. 따라서 5분 거리에 살지만 엄마를 보는 건 한 달에 한 번, 엄마가 김치와 반찬을 나눠 줄 때였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늘 아파트 주차장에서 엄마를 만났고 그러면 되도록 길게 엄마와 수다를 떨고 싶었다.

나는 수다 떠는 걸 스무 살 넘어서 배웠다. 용건 없는 대화는 무 쓸모 한 것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스몰 토킹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나는 감정 중심의 사람임에도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렀다. 아무도 내 감정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고 따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스무 살 넘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면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의 대부분은 침묵 속에서 지냈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혼자였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 내게 그런 침묵은 익숙하고 편했다.

아메드를 만나서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전화 통화를 하던 아메드가 "오늘 뭐 먹었어?" 하고 물었다.

"아니, 너는 내가 뭘 먹었는지 왜 그렇게 매일 궁금하니?"

"널 사랑하니까 네 하루가 좋았는지, 뭘 먹고 무슨 경험을 했고 마음은 어땠는지 궁금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다. 당연하지 않다. 지금까지 아무도 나에게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음은 어떤지, 뭘 먹었는지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른 가족들의 분위기를 나는 몰랐다. 그렇게 자란 탓인지 엄마의 유전자 탓인지, 나도 소소한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메드가 그렇게 말한 순간, 무엇인가 속에서 울컥하고 목울음이 올라왔다.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불쌍했다. 나는 어쩌면 그런 일상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뭘 먹었니, 어려움은 없었니, 뭐가 재미있었니... 그런 일상적인 자기표현들이 있었다면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더 명확하고 빨리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명상을 하고 영성 서적을 읽고 노력해도 조금만 방심하면 불안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안정적이지 정신 상태는 내 예민한 어린아이가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기를 다 지나왔다고, 이제 나는 충분히 나이도 먹었고 무뎌졌고 넉넉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보다. 통화를 하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메드는 종종 내 일상의 경계를 훅 치고 들어와 무너뜨렸다. 그건 아마 아메드 자체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따뜻함 때문이리라. 다만 나는 40년 넘게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므로 쉽게 바뀔 리 없다. 지금도 내가 아메드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 stop it." "enough!" 이니 말이다. 내 어린 아니는 내가 보살필게. 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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