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

10편 : 변명

by 채현

저는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성적이 나쁜 아이라도 하나의 문제를 이해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답을 맞혔을 때의 기쁨은 짧지만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쌓아두지 못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기쁨은 단순한 순간의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이 누적될 때 비로소 아이는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효능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은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포기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은 고등학교가 아니라 더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고등학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수업 중 제가 하는 모든 말을 빠짐없이 필기하고, 숙제가 아닌 문제까지 풀어 오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국어 수업 시간이 아님에도, 요즘 제 수업은 사실상 국어 수업이 됩니다. 문제를 읽고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개념과 문제 풀이는 분리되어 있고, 아이들은 문제 하나를 붙잡고 30초도 고민하지 못한 채 “모른다”라고 포기합니다.

그래서 수업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외우지 마.”
“틀려도 좋으니 식을 써.”
애원하듯 말합니다. 여기서 “외우지 마”란 단순히 암기를 거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쉽게 외움으로써 이해를 포기하지 말라는 절박한 명령입니다. 정답만 남기는 순간 사고는 멈추지만, 틀린 식조차 사고의 흔적이며 그것을 통해 배움은 이어집니다.

부모님들은 사교육을 찾습니다. 알바까지 하면서 보내시지만, 아이들의 문제 해결력은 줄어듭니다. 학생들이 선택 과목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친구가 같이 듣느냐, 점수를 쉽게 얻을 수 있느냐. 혹은 “이 과목은 듣는 사람이 적으니 1등급 맞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계산뿐입니다. 고3 교과목 중 수능 선택과목이 아니고, 절대평가되는 수업이라면 그 시간은 사실상 수면 시간이나 다른 수능 공부 시간이 됩니다.

학교를 직접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학생은 대부분 고3입니다. 교실에 들어가 보세요. 모든 수업을 깨어 듣는 학생이 있다면, 아마 그 학생은 전교 상위권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홉 편의 글에서 교육의 목표를 기초지식·문해력·메타인지라고 규정했고, 교육과 평가가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도 압니다.
“문해력과 메타인지는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다.”
“경쟁은 결국 낙오자를 만든다.”
“새로운 시험도 또 다른 권력 장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제가 매일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야말로, 그 비판을 반박하는 증거입니다.

문해력과 메타인지가 시험에서 측정 불가능하다면, 왜 PISA나 TIMSS 같은 국제평가가 지금까지 교육 개혁의 근거가 되었을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측정하려는 노력이 교육을 바꾸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언제나 누군가를 낙오자로 만듭니다. 그러나 이미 낙오자는 넘쳐납니다.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쟁을 없애겠다는 거짓말이 아니라, 경쟁을 올바른 방식으로 설계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시험이 또 다른 권력 장치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도구가 되는 것은 오히려 지식 암기 위주의 시험입니다. 문해력과 메타인지는 다릅니다. 텍스트를 자기 식으로 읽고 해석하는 힘,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아는 힘은 통제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오히려 이런 능력이야말로 권력의 작동을 견제하는 힘입니다.


사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해력과 메타인지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사교육의 효용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단기 훈련과 반복 문제풀이로는 얻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SES 격차 역시 완전히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재 발굴을 통해 최소한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습니다. 초등 단계에서 문해력과 메타인지를 평가하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SES의 영향을 덜 받은 시기에 아이 고유의 가능성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빠른 발달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특출한 잠재력이 사회적 배경에 묻히지 않도록 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교사 역량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 단위의 전국 시험을 제안했습니다. 교사의 수업은 여전히 과정 중심이어야 하지만, 평가의 일관성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이원 구조만이 교사 역량 격차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비판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국가 단위 시험을 치른다면,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부담만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안하는 시험은 학생을 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해력과 메타인지를 실제 교육에 뿌리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국가가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 교육은 결코 제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시험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지적 역시, 사실은 시험 그 자체가 아니라 어른들의 시선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시험은 본래 배우고 익힌 것을 점검하고, 학습 과정에서 필요한 피드백을 주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시험을 오직 줄 세우기와 선발의 도구로만 바라보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을 되찾도록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 다른 비판은, 문해력과 메타인지 평가조차 결국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실제로 7차 교육과정과 그 이후의 개편에서 교과 개념을 축소했을 때, 사고력보다는 단순 점수 경쟁이 심화되었고, 그 결과는 오히려 사교육비의 증가였습니다. 사고력이 약화되면 부모들은 더 많은 문제집과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사고력과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강화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는 단순 반복 훈련으로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사교육의 영향력은 줄어듭니다. 문해력과 메타인지 평가는 사교육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좁히는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담론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교육은 고통이다.”
“경쟁을 줄일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달콤하거나 잔혹한 말일 뿐, 진실이 아닙니다.

교육은 과정이며, 필요한 것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 과정은 반드시 공정한 평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부디 아이들에게 결과가 아닌 과정을 생각할 능력을 주세요. 세상이 결과만을 보기에 아이들도 그 결과에만 집착합니다. 메타인지는 그렇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쟁과 평가가 불가피하다면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 그것이 교육의 마지막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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