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은 대화가 안 돼!

문해력을 위한 제안

by 채현

“그 친구가 말 안 해서 내가 화났다.”
“내가 화나서 그 친구가 말 안 했다.”


이 두 문장을 같은 뜻이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은 잠시 멈춰 다시 읽을 것이다.
분명 원인과 결과가 바뀐 문장이다.
그런데 이 두 문장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문해력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
실제로 초·중등 학령기 아동의 약 30~40%가 인과 접속어(‘~해서’, ‘~때문에’)의 방향을 혼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이경화 외, 2017).
고등학생의 경우 감정이 개입된 문장에서는 약 25~30%가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보고되었다(박상희 외, 2018).
성인 역시 단문에서는 10~20%, 복문이나 감정 표현이 포함된 문장에서는 25~30% 수준으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Johnson-Laird, 1983).

문장 순서와 인과 순서를 일치시키거나, 감정이 같으면 같은 내용으로 읽는 경우, 혹은 ‘~해서’의 의미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대화는 논리의 흐름 위에서 진행되지 않고, 감정의 연상 속에서 방향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기억의 순서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내므로, 하루 종일 이야기를 이어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문해력 교육은 때로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색의 질서를 보여주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때 문해력이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식의 구조를 언어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문제를 단순한 문해력 부족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이건 사고의 방식, 더 정확히는 세계 인식의 좌표축이 다른 사람들의 문제이다.
사람마다 사고의 중심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인과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어떤 사람은 감정의 연상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이 두 방식은 누구에게나 함께 존재하지만,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이해의 방향이 달라진다.

전자는 원인과 결과의 질서를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A가 B를 일으키고, 그 결과로 C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사건의 순서보다 감정의 강도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A와 B가 단순히 동시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그 사이의 관계보다 ‘느낌’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문장을 두고도 서로 다른 세계를 읽는다.


문해력 교육의 과제는 이 방향 감각의 형성에 있다.
그것은 문법이나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가”를 언어 안에서 감지하는 능력이다.

논리적 좌표를 세울 줄 모르는 학생은 ‘왜’라는 질문 대신 ‘그냥’이라는 감정으로 사고를 닫는다.


이 순간 부모와 교사는 지식을 가르쳐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건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탐색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
“그건 틀렸어.”가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 하나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의 방향을 처음으로 의식하게 만든다.


문장을 바꿔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친구가 말 안 해서 내가 화났다.”
“내가 화나서 그 친구가 말 안 했다.”
두 문장을 나란히 써놓고 “어느 쪽이 먼저 일어난 일일까?”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곧 말의 순서와 의미의 순서가 다를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언어의 표면을 읽는 훈련이 아니라, 사유의 방향을 추적하는 훈련이다.


사고의 방향을 교정한다는 것은 탐색의 전환이다.
학생의 생각을 끊지 않고, 그 사고가 향하는 방향을 함께 따라가 보는 일이다.
그렇게 할 때, 아이는 논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재구성하는 법을 배운다.

문해력 교육의 목적은 정답을 맞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의 흐름을 스스로 추적하도록 돕는 일이다.
세계는 언제나 방향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 방향을 언어로 감지하지 못하면, 사람은 자기 세계에 머물 뿐, 타인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문해력 교육은 결국 글을 읽게 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향을 배우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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