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문해력과 메타인지를 위하여

by 채현

요즘 ‘비판적 사고’나 ‘리터러시’라는 말은 너무 쉽게 사용된다.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잘 말해지지 않는다. 나 역시 오랫동안 이 말들을 막연히 좋은 태도쯤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의 대화에서 묘한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상대의 말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따지기도 전에, 그 말의 배경이 먼저 작동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경력과 지위, 정서와 분위기가 판단을 앞질렀고, 질문은 곧 공격으로 오해받았다. 비판은 무례가 되었고, 생각은 조심스러운 행위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생각하기 이전에 멈추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책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주장은 대개 타당성을 증명하기보다 비판을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도덕적 언어와 인도주의적 표현, 모호한 형용사들이 그 방패가 된다. “중요하다”, “필연적이다”, “인간적이다” 같은 말들은 반박하기 어렵지만, 무엇이 어떻게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언어는 논리적 검증 이전에 감정적 판단을 유도한다. 그 순간 논증은 사라지고, 관계만 남는다.


책은 다르다. 책은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 되돌아갈 수 있고, 멈출 수 있으며,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다. 저자의 표정도, 목소리도, 분위기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는 이것이다. 책 앞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책임이 온전히 저자에게 있다.

핵심 개념이 반복해서 설명되는데도 구조가 잡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자의 무지가 아니라 설명의 실패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독서는 수용이 아니라 검증이 된다.


예전의 나는 책이 이해되지 않으면 먼저 나를 의심했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같은 유형의 불편함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감각이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지점은 대체로 전제가 생략되었거나, 정의가 흐릿하거나, 형용사로 논증을 덮은 부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독서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었다.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권위를 가졌는지는 판단에서 잠시 제외했다. 문장과 구조만 남겼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그 지점에 머물렀다. 막힘은 회피의 신호가 아니라 검증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의식적으로 한 일은 형용사와 도덕적 표현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중요한”, “바람직한”, “현실적인”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단어를 지우고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때 조건과 관계, 인과가 남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수사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타당성도 나누어 보았다. 주장 내부에서 논리가 일관되는지, 현실이나 역사와 비교했을 때 어떤 조건에서만 성립하는지를 따졌다. 언제나 맞는 주장인지, 특정 맥락에서만 성립하는 주장인지를 구분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신경 쓴 것은 어휘였다. 이 단어가 저자만의 정의인지, 일반적 용례인지부터 분리했다. 일반적 사용이라면 사전적 엄밀성을 기준으로 해석했다. 어휘의 의미가 흐려지는 순간, 논증은 자연스럽게 무너졌다. 그때의 혼란은 이해 부족이 아니라 정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리터러시는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내 생각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견뎌야 하고 '상대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무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능력은 요구의 대상이라기보다 발견의 대상에 가깝다. 다만 사고를 망치지 않는 환경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환경이 바로 책이다.

결국 리터러시를 갖고 싶다면, 가장 좋은 상대는 사람보다 책이다. 책 앞에서는 권위를 잊을 수 있고, 이해되지 않는 지점을 붙잡을 수 있으며, 형용사와 도덕을 걷어내고 어휘의 의미를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이건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를 보존하기 위한 기술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정확히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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