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능력은 어떻게 가르칠까?

25세 이전의 아이들 위한

by 채현

책을 읽는다는 것과 요약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내용을 안다’는 결과에 도달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역량에 미치는 영향은 완전히 다르다. 요약은 결론을 전달한다. 독서는 그 결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과하게 한다. 이 차이는 성실성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가 어디에서 생성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독서는 결론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전제에서 결론으로 이동하는 사고 경로를 독자 내부에 재현시키는 훈련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 아니라, 저자가 어떤 전제 위에서 어떤 판단을 거쳐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따라가 보는 일이다. 이 과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겪은 사람은 이후 비슷한 문제를 만났을 때, 남이 준 결론을 외우지 않아도 스스로 전제를 세우고 다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독서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지점에서 흔히 효율이라는 반론이 등장한다. 시간이 없으니 요약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효율은 이미 사고 경로가 내부에 존재할 때만 성립한다. 사고 경로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약은 효율이 아니라 생략이다. 생략은 능력을 단축시키지 않는다. 능력을 만들 기회를 삭제한다. 요약은 지식을 빠르게 늘릴 수는 있지만, 사고역량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삶을 바꾸는 독서는 결론을 아는 독서가 아니라 사고를 다시 걷게 만드는 독서다. 삶이 바뀐다는 것은 감정이 흔들린다는 뜻이 아니다. 삶이 바뀐다는 것은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바뀐다는 뜻이다. 판단과 선택은 머릿속에 저장된 결론의 목록이 아니라, 전제에서 결론으로 이동하는 사고 경로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독서가 삶을 바꾸는 순간은 인상적인 문장을 만났을 때가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문단 앞에서 멈추고, 다시 전제를 확인하고, 반론을 떠올리고, 끝내 자기 언어로 재구성해 내는 순간이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책을 사주는 이유도 대부분은 이 원리를 명확히 이해해서가 아니다. “책이 좋다더라”라는 말이 먼저이고, 이유는 뒤늦게 붙는다. 그러나 이 선택이 완전히 근거 없는 미신은 아니다. 부모는 설명은 못 해도 감각적으로는 안다. 책을 읽는 아이는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일을 혼자 견디는 시간을 갖는다. 바로 그 장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문제는 책을 사주는 행위와 책이 요구하는 조건이 자주 충돌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곧바로 개입하고, 줄거리를 설명해 주고, 핵심을 요약해 주고, 결론을 먼저 알려준다. 책은 곁에 있지만, 책의 핵심 훈련인 ‘혼자 사고하는 시간’은 제거된다. 그래서 책은 남지만, 책이 만들어내는 능력은 얇아진다.


여기에 AI가 등장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도 “무엇에 사용하는가”의 문제는 존재한다. 그러나 AI는 성격이 다르다. AI는 정보 접근을 빠르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도구다. 전제를 정리하고, 논지를 구성하고, 요약하고, 결론에 도달한다. 사용자는 그 경로를 걷지 않아도 결과를 받는다. 이 순간 사고와 결과는 분리된다. 사고를 하지 않아도 성과가 나온다.

이 변화가 특히 치명적인 이유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은 대체로 하나로 수렴한다. 인지적 비용을 지불하는 일이다. 불확실성을 버티는 일, 여러 가설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 책을 끝까지 읽고 스스로 요약하는 일은 모두 비용이 든다. 시간이 걸리고, 실패가 발생하고, 답이 바로 나오지 않으며, 불편함이 남는다. 그러나 바로 이 비용 지불이 연습이며, 이 연습이 사고역량을 만든다.


AI는 이 비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한다. 막히는 순간을 줄여주고, 불확실성을 정리해 주고, 읽기와 정리를 대신해 준다. 아이 입장에서는 분명한 도움이다. 그러나 발달의 관점에서는 훈련 자체가 사라진다. AI를 옆에 둔 상태에서 불확실성을 끝까지 버티고,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책을 스스로 읽고 요약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인지는 본래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AI는 이 경향을 완벽하게 실현해 주는 환경이다.


그래서 역설이 생긴다. AI의 사용법은 AI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진다. 사고 경로가 내부에 형성된 사람만이 AI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AI는 도구가 아니라 대체물이 된다. AI를 잘 쓰는 능력이란 프롬프트의 기술이 아니라, 언제 AI를 쓰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는 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 억제 능력은 혼자 사고해 본 경험이 있을 때만 생긴다.


이 모든 논의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 하나로 정리된다.
아이가 과제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AI의 도움을 받으면 시간과 경제적 비용의 효율은 압도적이다. 결과물도 완성된다. 점수도 받는다. 문제도 없다.

아이는 감상문을 제출한다.
점수도 받고, 문제도 없다.
다만 그 아이는
그 과제가 요구한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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