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바로크 양식 건축은 화려함과 극적인 연출로 대표되는 역사적인 건축 양식입니다. 교회와 군주들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시작된 바로크 건축은 유럽 전역은 물론 남미 등 세계 곳곳으로 퍼지며 최초의 국제적 건축 양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거대한 돔과 섬세한 조각 장식으로 이루어진 성당과 궁전들은 보는 이의 감각을 압도하며 ‘장엄함’의 미감을 구현했습니다. 비록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새로 등장한 신고전주의 등에 밀려 한동안 주춤했지만, 바로크의 유산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건축가들은 과거의 이 화려한 양식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바로크 양식 건축이 현대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로크 건축은 1600년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양식으로, 르네상스의 고전 질서에서 탈피해 감성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을 강조했습니다. 건축가들은 성당, 궁전 등에서 극도의 장식성과 웅장한 규모를 통해 신과 왕권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고, 그 결과 탄생한 공간들은 관람객에게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바로크 양식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풍부한 장식: 외벽과 실내에 섬세한 조각, 스투코(stucco) 장식, 화려한 무늬 등을 아낌없이 활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곡선과 역동성: 평면과 입면에 직선보다 곡선과 타원 형태를 적극 도입하고, 파사드(façade)와 실내 공간을 물결치듯 유려하게 구성하여 움직임과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빛과 그림자의 연출: 돔 천장이나 큰 창을 통해 자연 채광을 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명암 대비를 활용해 공간에 극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어두운 예배당에 상부 천창으로부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은 바로크 양식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예술의 종합: 건축과 회화, 조각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하나의 종합 예술을 이룹니다. 천장 프레스코화와 벽화, 곳곳의 성상 조각들이 건축 공간과 어우러져 관람자를 압도합니다.
이처럼 감각적인 바로크 양식은 이후 로코코로 한층 화려하면서도 가벼워졌다가, 18세기 후반엔 차분한 신고전주의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네오바로크(Baroque Revival)로 부활하여 유럽의 극장, 시청 등 많은 건물이 다시금 바로크 풍으로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바로크 양식 건축의 미감과 아이디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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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기능주의가 주류를 이뤘던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서는 한때 과도한 장식이 배척의 대상이었습니다. "장식은 범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순함을 추구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곧이어 등장한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역사적 건축 양식에서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디테일한 장식성으로 표현되는 바로크 건축 미학은 현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장식성과 디테일의 부활은 현대 건축에서 바로크의 영향을 보여주는 뚜렷한 예입니다.
유리와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상자 형태 건축에 염증을 느낀 건축 디자이너들은 외벽에 복잡한 패턴이나 조각 같은 디테일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고전적인 천사 조각이나 돌출된 장식을 붙여놓은 것은 아니더라도, 건물 표면에 풍부한 텍스처와 깊이를 부여함으로써 바로크적 화려함의 향기를 부여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실제로 뉴욕의 초고층 울워스 빌딩 (Woolworth) 설계안에서는 파사드 전체를 복잡한 기하학적 조각과 장식으로 뒤덮어 마치 현대의 성당처럼 보이게 한 사례도 있습니다.
울워스 빌딩 (출처: 위키페디아)
또한 곡선적 형상과 역동적 공간에서도 바로크 양식 건축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건축 구조와 재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축물의 형태는 더욱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변모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곡선형 지붕과 비정형 외관들은 고전적 직선미에서 벗어나, 바로크가 추구했던 운동감 있는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냈습니다. 예컨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물결치는 듯한 지붕 형태와 빛과의 조화는 바로크 건축의 역동성과 극적인 연출을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출처: 위키페디아)
공간의 극적 연출과 경험 측면에서도 바로크 시대와 현대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건축이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고자 했다면, 현대의 많은 공공 건축물 역시 방문객에게 잊지 못할 공간 경험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박물관, 공연장, 종교 시설 등에서 웅장한 아트리움이나 계단실을 두고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으로 분위기를 연출하는 기법은 바로크의 극적인 연출을 계승한 것입니다. 현대의 건축가들은 과거만큼 화려한 장식을 붙이지는 않더라도, 공간 그 자체를 캔버스로 삼아 빛과 형태, 색채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출처: 위키페디아)
바로크 양식의 영향은 현대 건축의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직접적인 양식의 재현입니다. 19세기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오페라 하우스나 관공서 건물이 지어졌듯이, 현대에도 전통 양식을 선호하는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바로크 양식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여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 맥락을 살려야 하는 성당이나 극장 등의 신축에서는 과거 바로크 양식의 조형과 장식을 모방해 시대를 초월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현대적인 공간에 바로크 요소를 포인트로 활용하는 경향도 눈에 띕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미니멀한 공간에 앤틱한 바로크 가구나 소품을 배치해 강렬한 대비를 주는 것이 한 예입니다. 예컨대 모던한 거실 한켠에 금박으로 장식된 바로크 스타일의 거울이나 샹들리에를 두면, 단순한 공간에 품격과 화려함이 더해져 마치 예술 작품 같은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기법은 '클래식과 현대의 조화'라는 콘셉트로 주목받으며, 고급 주택이나 부티크 호텔 로비 등의 디자인에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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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을 통한 새로운 바로크 양식의 구현도 흥미로운 응용 사례입니다. 컴퓨터 연산 기반 디자인과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 시대였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복잡한 형태와 패턴을 현실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위스의 건축가 미하엘 한스마이어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천 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둥을 디자인하고 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여 일종의 '디지털 바로크' 공간을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컴퓨터 연산으로 생성된 기하학적 무늬와 곡선은 사람이 손으로 조각한 전통 장식 못지않은 섬세함을 보여주며, 현대 기술이 옛 양식의 화려함을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시킨 사례로 평가됩니다.
일본의 이토 토요오는 멕시코 푸에블라에 국제 바로크 박물관을 설계하면서, 형태적인 장식을 배제하는 대신 빛과 곡선 벽면으로 바로크적 분위기를 구현해냈습니다. 이 박물관은 자연광이 흐르는 유려한 공간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바로크 특유의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뛰어난 예로 손꼽힙니다. 이렇듯 바로크 양식 건축은 현대 건축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 건축은 단순히 역사적인 유물이 아니며, 현대 건축의 혁신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원천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장식성의 재조명과 곡선 및 역동적인 형태의 부활, 그리고 현대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바로크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바로크 양식은 건축가들에게 풍부한 영감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건축의 미래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