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환상
친구와 탄자니아 한 식당에서 개를 보았다. 개는 갑자기 옆구르기를 하고, 전진 후진 포복을 했다. 마치 군견처럼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우리를 보란 듯이 개는 계속 재주라 부르기 애매한 재주를 부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 해도 믿지 않겠지? 과장되거나 허풍이라 생각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키득거리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빅피쉬 라는 영화를 생각했었다.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던 친구에게 대강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늘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와 허풍으로 꾸며내는 아버지가 못마땅한 아들은 도대체 진실을 모르겠다며 아버지의 이야기에 싫증을 낸다. 그렇게 어긋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버지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아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죽음의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 말해달라 한다. 병실에서 차갑게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호흡이 끊길 거예요, 맥박이 멎겠죠,라고 말할 수 없는 아들은 처음으로 단순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의 삶, 강에 잠기러 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아버지가 인생에서 겪은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로 아버지와 아들은 화해하게 되고, 아버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남게 된다.
대부분, 우리가 스쳐간 인연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사실상 육체로는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삶에선 죽음을 맞이한 존재이다. 우리는 그 존재들을 다만 이야기로 기억할 뿐이다. 그 시절의 나를 투영해서 보았던 그 사람, 그래서 이 영화는 왜 우리가 판타지와 이야기에 목맬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시절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 어릴 때 높게 느껴졌던 학교 문턱이 어른이 되어선 너무나 낮은 작은 계단이 되었듯이 말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진짜 학교 계단일까? 실제는 없이, 내게는 학교 계단에 관한 이야기만 남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이야기를 만드는 인생은 결국 모험과 닿아있다는 팀 버튼의 영화론처럼 느껴졌다. 인생은 모든 모험이며, 그 모험의 기록을 남기는 것, 빅피쉬 영화는 팀 버튼의 모험론에 대한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자기 삶이 커져버리면 작은 연못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떠남, 인생의 아늑함을 떠나기 위해선 신발 없이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인생의 가혹한 결정들, 언제나 죽음과 끝을 생각해야만 모험을 완수할 수 있다는 책임감 등, 좋은 영화는 늘 감독의 진정성 있는 자기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는데, 빅 피쉬는 이런 면에서 그간 팀 버튼이 쌓아온 모험과 판타지에 대한 하나의 자기 이야기처럼 들려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실제 이 영화를 찍는 가운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했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관한 팀 버튼의 애착과 통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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