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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과 Feb 19. 2023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바다 재구성하기


 바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장소.


 친구 촬영을 도우러 부산 바다를 다녀왔다. 잠시 바다를 혼자 걸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다. 한낮의 바다를 걸을 때면 나는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종종 떠올린다. 바다를 볼 때면 늘 바다와 관련된 상념과 기억들이 여러 개가 동시에 떠오르곤 했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탄자니아 바다가 떠올랐다.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렘을 갈 때면 마주했던 짠내 나는 바다, 앞으로 탄자니아에서 펼쳐질 일도 모른 채 곧 각자의 지역으로 흩어질 동기들과 바닷가에서 나누었던 마지막날 밤, 바다와 바람이 섞인 소리들. 이내 이런 바닷가를 볼 때면 나는 바닷가에서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은 섬마을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학부모님들께 인사드리러 항구로 찾아가는 상상도 하곤 했었다.  바다를 들릴 때면 마치 바다가 품고 있는 나의 수많은 기억들을 파도에 실려 돌려받곤 한다.


 요즘은 바닷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표정과 몸짓들이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를 따라 예쁘게 포장된 과메기 상자를 팔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물건들을 거래하는 어른들을 재빠르게 살피는 아이의 눈빛이 그토록 빛나보일 수 없다. 시장 어느 구석진 칸에서는 과연 오늘 팔린 물건들이 있는가 싶은 할머니 두 분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서 싸 온 팥죽을 한 수저 드신다. 바닷가에서 일하시는 어부 아저씨들의 옷과 표정에는 한가득 주름이 가득하다. 바닷가에서 살고 일하는 분들을 보노라면, 바다를 낭만적으로만 바라보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영화 작업을 마친다면 다음 작품은 바닷가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자신들만의 기억과 상념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와 관객의 머릿속을 철썩이게 만드는 그런 영화. 바다에 담긴 거대한 생명력과 에너지들, 한없이 낭만적이지만 한없이 현실적인 그 바다의 양면적인 모습들을 담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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