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대신 채워지는 것들.
21살, 영국 윔블던에 도착해서 제일 먹은 음식은 '스타벅스, 캐러멜 마키아토'였다.
우선 영국에 오게 된 이유부터 말하면, 나는 거의 반타의로 영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 있으면서 계속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에게 거식증과 폭식증을 모두 안겨준 사람과 같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 그곳에서 벗어나는 길이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고작 20살 대학생에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나가, 거의 새벽에 들어오거나, 방학 내내 배낭여행을 가서 그 사람이 주는 답답함을 피하는 것뿐이었다.
함께 있으면 정말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한 번은 오랜만에 같이 있게 된 주말, 방 안에서 내가 가진 모든 약을 한 번에 다 먹은 적이 있었다. 죽거나, 토하거나, 오랜 시간 잠을 자거나,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 후자였다. 아주 오랫동안 자다가 일어났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어서 그런지 깊은 잠을 자고 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속이 울렁거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토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룩해서 트림할 때마다 올라오는 약 냄새. 그것이 주는 불쾌함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은 다시 생각나는 것 같다.
그 사람 곁을 떠나고 싶었다.
손목도 그어보고, 약도 먹어보고, 내 삶을 스스로 끊는 것은 솔직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몸 안에서 죽는 것이 두려워서 약하게 손목을 그었거나, 2~3배로 먹어야 되는데, 나 스스로 그래도 조금은 덜 먹었거나. 아무튼 그때 알았다. 자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방학이 오기 전에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해서 몇 년 동안 해외 나가있겠다고 말했더니, 이왕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가는 것이라면 영국으로 가라고 하셔서, 갑자기 영국 런던으로 가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은신처는 '죽어라 일하고, 일해서 어떻게든 알게 되는 영어'였는데 그 사람 때문에 '좋은 곳에서 쉬면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배우는 영어'가 되었다.
그 사람도 알고, 나도 알았다.
20대의 나는 돈 때문에 그 사람 곁을 떠날 수가 없었고, 30대의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찾는 외로움을 외면할 수 없었고, 40대의 나에게도 분명 다른 이유로 그 사람을 떠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윔블던에 도착해서, 역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영국에 도착해서부터가 아니다.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면서부터 생각했다. '이 집을 나오면, 다시는 그 사람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 나를 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