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사가 Aug 30. 2023

아이의 공책이 찢어져 왔다

- 가정이 첫번째 -


아이의 공책이 찢어져 왔다. 한번일 땐 챙겨 넣다가 그랬나, 두번일 땐 장난치다 그랬나, 세번일 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학교에 있는 엄마다 보니 걱정이 많다. 경험치는 득이 될 때가 많지만 독이 될 때도 있다. 혹시 우리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부터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있나까지 생각의 꼬리가 길어진다. 처음 시작은 공책을 찢는 것일 수 있지만 나중엔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싶어 시름이 함께 깊어진다.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따님아, 공책이 찢어진 거 알고 있어?"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그게 왜 찢어졌냐 반문한다. "혹시 가방에 넣다가 그랬어? 아니면 이동 수업 시간에 친구가 낙서한다고 찢었으려나?"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해 던지는 나의 물음이 부끄럽게 따님은 딱 한마디 한다. "몰라."


아이는 시큰둥하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는 평온히 숙제를 한다. 속이 타는 건 나뿐이다.


시간이 좀 지나 저녁을 먹으며 다시 물었다. "따님아, 이동 수업할 때 가방을 잠겄었어 아니면 열어놨어?" "당연히 열어놨지, 엄마!" 머리가 띵- 울린다. 폭풍 잔소리가 이어진다. 학교에 가서 가방 정리, 사물함 정리를 하고 나면 꼭 가방을 닫아놔야 한다 일렀다. 열어놓으니 안에 있는 공책이 빠졌을 수도 있고, 바닥에 떨어져서 찢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가방을 내가 잘 챙기는 게 첫 번째라 강조, 또 강조했다.


고민을 하다 담임 선생님께 상담톡을 보냈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고, 아이는 본인이 찢었다고 지만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동 수업 때 아이의 자리에 앉는 친구가 있는지, 혹은 쉬는 시간에 아이  자리 근처에서 많이 모여노는지 등의 궁금한 것들을 조심스레 여쭸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가방을 꼭 잘 닫아놓고 소지품 관리를 잘하라 지도했다고도 말씀드렸다.


나도 장문이었는데, 더 긴 답변이 선생님께 왔다. 내용인즉슨, 아이들에게 공책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너무 놀라더라, 친구 물건에 손대지 않기와 가방 잘 챙기기를 전달했다고 하셨다. 새 공책 한 권도 보내주셨다. 괜히 선생님의 일을 더해드린 느낌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시에 나는 진상 부모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학교에 있으며(중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인)우리 아이와 비슷한 일을 많이 접한다. 대뜸 연락이 와 "선생님, 우리 애 책이 찢어져 왔는데/낙서가 잔뜩 되어서 왔는데 아세요?" 또는, "우리 애 학습지를 누가 다 버렸다는데요!"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고, 누가 다 버린 건지, 본인이 버린 건지, 잃어버린 건지, 명확하지 않은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답해야 한다.


우리 아이 일을 겪으며, 문득 여태껏 보호자의 민원에 왜 나는 항상 죄인 같은 마음으로 응대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공책이 엉망이고 학습지가 없어진 상황이 속상할 수는 있지만, 그게 (무려) 담임선생님이 꼭 알아야만 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일인가 싶다. 집에서 아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묻고 소지품을 잘 관리하라고 타이르는 게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거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해 따질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있었고, 아이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가정에서는 이와 같이 지도했지만, 이러한 부분이 걱정되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상황이 어떤지 살펴봐주시고 다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이게 선후관계가 올바르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기르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교사로서의 역할 역시 경계를 명확히 하게 되는 듯하다. 어떤 동료들은 오히려 아이와 부모를 많이 이해할 수 있어 참게 되는 면이 많다고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다. 예전보다 더 당차게 선을 긋고 구분 짓는다. 참교사 프레임에 갇혀 '교사라면 응당-'이라며 감내했던 것들이 어쩌면 가정과 보호자가 감당했어야 할 부분이었고, 그걸 떠안은 나 같은 교사가 하나둘 늘어나며 보호자들도 자신의 역할을 등한시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일면의 죄책감마저 갖고 있다.


아이의 제1양육자는 보호자다. 보호자가 먼저, 학교와 사회는 함께. 이 기본 원칙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