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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Mar 17. 2021

세상을 뒤흔드는 단 한 컷

<스쿠프!> 2016


2011년 가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출산을 앞둔 만삭의 부인을 의사인 남편이 목 졸라 살해한 충격적인 범행. 한창 사회부에서 일할 때라 자연스럽게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다룰 정도로 사회적인 파장도 컸고 재판 과정에서의 다툼도 첨예했다.


남편은 경찰에 아내가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저절로 목이 압박돼 질식으로 죽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아내는 평소 왕복 2시간 거리의 직장까지 문제없이 출퇴근하는 건강한 여성이었고 빈혈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돌연사로 보기엔 뭔가 영 자연스럽지 않은 자세로 욕조에 쓰러져 숨져있었다.


아내의 손톱에서는 남편의 DNA가 발견됐다. 손으로 상대에게 격렬히 저항할 때나 남을 법한 흔적이다. 남편은 전날 밤 아내에게 자기 등을 좀 긁어 달라 부탁했고 그때 각질과 함께 나온 DNA일 거라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각질에서 DNA가 검출되기는 힘들며 심한 피부병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하자 남편은 자기에게 사실은 아토피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남편은 아토피 관련 피부과 진료를 받은 기록이 전무했다.


남편의 얼굴과 팔뚝에는 수상한 상처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국과수 부검을 통해 아내의 몸에서도 폭행의 흔적들이 발견되자 결국 1심에서 징역 20년형의 유죄를 선고받는다. 이날 선고가 끝나자 의사 남편의 대리인이라는 그의 형이 기자들 앞에 섰다. 자기들은 의사 집안이라 경제력에서는 부족함이 없으니 지금부터 전력을 다할 거라는 입장 표명이었다. “1심은 분명 아쉬운 결과가 나왔지만 포기하긴 이르다. 항소심부터는 김앤장을 선임할 것이고 한국 국과수는 이제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니 캐나다의 저명한 법의학자를 초빙해 반격에 나설 것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가보자!”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무리뉴 감독의 기자회견을 보는 줄 알았다. 자기 동생의 부인이니까 제수씨와 조카, 소중한 가족이 두 사람이나 유명을 달리한 상황인데 이런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떠나간 이들의 명복을 빌거나 애도하는 모습은 단 1초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의사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명횡사한 아내의 장례식장에 앉아 판타지 소설 17권을 모두 읽었다는 증언만큼 그야말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의사와 나는 나이가 같았다. 우리는 같은 해에 수능을 본 동갑 친구였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쩌지. 물론 내가 감히 그에게 판결을 내릴 위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저 본업을 다하고 싶었다. 얼굴을 아주 대문짝만 하게 찍어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 이런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줘야 해? 공포 속에 떠나간 부인과 아이의 인권보다 범죄자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건 대체 누가 정한 거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며 차에 타고 내릴 때, 아주 잠깐씩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했다. ENG카메라를 쥐고 있는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정말 제대로 찍고 싶었다. 곧 베이지색 털후드 점퍼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꼼꼼히 가린 의사 남편이 등장했다. 살인자의 얼굴이다. 화면 한가득 차고 넘칠 정도로 타이트하게 줌인했다. 야야, 마스크 내려라. 너 같은 놈도 눈코입 다 달려있는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 한 번 하자꾸나 친구야!






가수, 운동선수, 배우, 개그맨, 아나운서… 화제의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뒤를 쫓아 사진을 찍는 남자 미야코노죠 시즈카. 유명 인사들의 불륜, 치정, 스캔들을 카메라로 몰래 담아 잡지에 팔아넘기는 중년의 프리랜서 사진기자다. 정통 시사보다는 연예인들 가십과 여성 모델의 수영복 사진으로 연명하는 주간지 ‘스쿠프’의 신입 취재기자 나메카와 노비와 시즈카가 한 팀이 되며 겪는 좌충우돌 취재기를 담은 영화 <스쿠프!>.



그의 일은 우리나라로 치면 디스패치와 비슷하다. 각종 소문과 첩보를 통해 연예인들의 사생활 속으로 아주 깊게 잠입한다. 유명한 남녀 연예인이 동석한 술자리가 생각보다 건전하게만 흘러가자 시즈카는 초조해진다. 이 정도로는 약하다. 누구 한 명 술이나 약에 취해 쓰러지거나 여자를 둘러업고 러브호텔로 향하거나 적나라한 스킨십이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사진은 팔리지 않는다. 빨리 뭔가 자극적인 게 터지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그를 보면서 노비는 말한다.


노비: 그런데 진짜 최악이네요 이 직업.

시즈카: 그래, 최악이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은 바퀴벌레나 쥐새끼보다도 못하다고. 그런데 그러면서 왜 다들 이런 걸 보고 싶어 하는 거지?



티격태격하면서도 의외의 파트너십을 발휘해 둘은 맡은 임무를 척척 수행해낸다. 미래의 총리감으로 불리는 인기 정치인이 부인을 버젓이 집에 두고 인기 여자 아나운서와 호텔방에서 불륜을 벌이는 현장이라거나 연예인들의 동거, 고상한 지식인 행세를 하던 이들이 술집에서 난잡하게 놀아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관음증의 세상인가 알 권리의 세상인가. 사람들은 스쿠프에 열광하고 판매부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차기 편집장이 유력한 선임기자 사다코는 이번 기회에 잡지의 시사 보도 부분에 좀 더 힘을 싣고자 한다. 여성 4명을 강간 살해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의 현장검증이 다음 주에 잡혀있으니 거기서 그의 얼굴을 담아보자. 미디어에 공개된 건 학창 시절 졸업사진 밖에 없으니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지금의 얼굴을 내보내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지금의 ‘스쿠프’가 갑자기 딱딱한 시사주간지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동료도 있다.



바바: 다들 모르겠어? 지금 우리는 종합오락지라고. 독자가 보고 싶어 하는 건 그라비아 누드, 라면 특집, 연예인 스캔들 같은 거야. 잡지가 권력에 저항한다느니 저널리즘 같은 걸 얘기하던 시절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어.

노비: 저기… 잘 모르지만 일단 저는 저 사람이 벌인 짓을 생각하면 엄청 화가 나요. 살해당한 건 저랑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인 데다가 더 어린 여고생도 강간까지 당한 다음에… 저 저널리즘이라던가 그런 건 잘 모르지만, 그리고 저런 놈 가만히 둬도 어차피 사형될 테지만, 그래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는 뭔가 성에 안 찬다고 해야 할지…

바바: 그럼 뭐야?! 이놈의 얼굴을 찍어서 세상에 퍼뜨려야만 죽은 애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소리야? 이봐, 피해자에게도 범인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다고! 우리 매스컴이란 말이야…

노비: 그러니까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런 건!!


미디어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범인의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과 아닌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언론에게는 살인범의 얼굴을 내보낼 권리가 있나? 살인범의 가족들은 아무 죄가 없어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매장당하고 피해받아도 되나? 그럼 피해자의 유족들은?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최소한의 처벌보다도 범죄자의 인권이 우선이란 말인가? [범죄 피의자의 인권과 언론의 역할] 이라는 언론정보학과 전공 수업을 한 학기 내내 진행해도 정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다. 스쿠프 편집부는 막내 기자 노비의 서슬 퍼런 분노에 동조했는지 모두가 힘을 합쳐 살인범의 지금 얼굴을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큼직하게 특집 기사를 편성한다. 살인범의 얼굴은 언제나 그랬듯 지극히 평범했다.



여자 밝히는 능글능글한 중년의 베테랑 사진기자와 아직 좀 허술하긴 해도 근성 있는 언론인으로 씩씩하게 커가는 취재기자의 버디무비로 흘러가던 작품이 막바지에 이르러선 급하게 판을 키운다. 원래부터 멘탈이 불안정했던 시즈카의 친구 챠라겐이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인질극을 벌이는 현장에 도착한 시즈카와 노비. 사진부터 찍어야 하나, 그를 진정시키고 말려야 하는가, 현장에서 도망치는 게 우선인가, 아니면 인질부터 대피시켜야 하나. 혼란스러운 가운데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진 거라곤 카메라 밖에 없던 남자. 그가 마지막으로 담고 싶었던 건 어떤 사진이었을까. 혹 자기가 찍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군가의 카메라에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 싶었을까. 지칠 대로 지친 삶의 엔딩컷. 시즈카는 더할 나위 없이 그 다운 사진으로 찍히고 만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처절하게 담아낸 로버트 카파의 전쟁 사진에 반해 소년 시절부터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중년의 파파라치. 공교롭게도 그가 좋아하던 카파의 작품과 꽤나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 한 장으로 모두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상업영화인지라 아주 깊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닌척하면서도 모두가 원하다 보니 끊임없이 공급되는 자극적인 옐로 저널리즘의 폐해, 정도를 넘어서 범죄의 영역에 이를 만큼 망가져버린 취재윤리, 한편으론 그런 취재를 받아도 싼 사회지도층들의 일탈과 불법에 대해 툭툭 건드려준다. 잡지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얼마나 고생고생하며 일을 하는지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묘사는 덤.


차 안에서 잠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늘어나는 음식 쓰레기와 페트병. 서로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시선만큼은 계속 정면을 향하고 있는 앰부쉬 취재의 리얼함이 도무지 남 얘기 같지 않아서 한참을 빙그레 웃으며 지켜봤다. 지금 이 시간에도 권력층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짙게 선팅 된 차 안에서 하품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을 사건기자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보내고 싶긴 한데… 근데 2021년 대한민국에 그런 기자가 도대체 있기는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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