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우기(雨期): 일 년 중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
지난해 9월 대통령 해외순방 당시 논란이 됐던 발언을 보도한 뒤, 기자생활 17년 만에 처음으로 수사를 받게 됐다. 이미 수사기관에서 보도 당일 통신기록 조회를 했고, 변호사를 통해 수사 진행상황은 계속 지켜보고 있다. 나는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사실 고발건도 개인이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데, 10•29 참사(이태원 참사) 당일 보도국에서 야근 당직을 서면서 뉴스 특보를 했고, 사고 당시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트라우마가 생겼다. 난생처음으로 심리치료라는 것도 받았다. 괜찮으려 했지만 괜찮지 않은 상황들이 반복됐다. 아니, 괜찮으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몰랐다. 때론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작년 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업무를 내려놓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괜찮아질 때까지 일을 쉬게 됐다.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지금 여기는 베트남이다.
1월 1일부터 이곳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일주일 내내 비예보만 있었다. 설마 그래도 하루는 해가 뜨겠지 싶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우기엔 비만 내린다. 아무리 햇빛 보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어도 소용없었다.
나도 울고 싶은데 하늘이 대신 울어주는 건가?
비가 멈춰야 뭐라도 할 텐데, 비 때문에 뭘 할 엄두가
안 났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기엔 뭘 하려고 애를 써도 비는 멈추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우기가 끝나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어쩌면 나도 내 인생의 우기를 보내고 있는데
내 인생의 우기에, 베트남에서 우기를 만난 건
행운이었던 걸까?
이곳 사람들은 우기에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길거리에 오토바이 탄 사람부터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까지..
우기라고 오늘 하루를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베트남의 우기는 끝나가고 있다.
내 인생의 우기도 끝이 있겠지?
그리고 이곳에서 또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인생에 있어서 우기를 만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오
내가 운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 시기를 거쳐야
계절이 바뀌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어야 자연이든
사람이든 성장하기 때문에, 단지 내가 그 시기를 지금 만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인생에 우기가 찾아올 수 있다.
어쩌면 해마다 우기를 겪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인생의 우기를 만난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기라고 오늘을 포기하지 말아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그러면 언젠가 해 뜰 날이 올 겁니다. 우리, 그때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