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맥서점 | 2026
영화는 두번 정도 봤던 것 같다. 영화를 본 후에 소설 원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일단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또다른 연쇄살인범과 마주친다'라는 설정이 신선했고 영화의 완성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 더 깊은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지는 않았었다. 영화 '척의 일생(The life of Chuck)'을 본 후 책을 찾아 읽게 된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런데 책을 접하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소설 '척의 일생'은 영화에 담지 못한 내용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일단 주인공의 일기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은 작가가 스토리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그러한 구조 속에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재치있는 표현들을 채웠다.
그렇다고 어떤 사상을 펼치거나, 깊은 사색으로 빠지게 만드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반야심경이 손에 잡힌다. 펼쳐 읽는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업스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업스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함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p.14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p.18
카그라스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뇌의 친밀감을 관장하는 부위에 이상이 생길 때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가까운 사람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더이상 친밀감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예컨대 남편은 갑자기 아내를 의심한다. "내 마누라 얼굴을 하고 꼭 내 마누라처럼 구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누가 시킨거지?" 얼굴도 똑같고 하는 일도 똑같은데 아무래도 남처럼 느껴진다. 낯선 사람으로만 보인다. 결국 이 환자는 낯선 세계에 유배된 것과 같은 기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p.23
누군가의 소설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노작가가 강변을 산책하다가 한 젊은이를 만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야 깨닫는다. 강변에서 만난 그 젊은이는 바로 자신이었음을. 만약 젊었을 때의 나를 그렇게 만나게 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p.29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p.39
선사시대 인류의 유골을 조사해보면 태반이 살해당한 것이라 한다. 두개골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뼈가 예리한 것으로 잘려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연사는 드물었다. 치매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테지. 나는 선사시대에 속한 인간인데 엉뚱한 세상에 떨여져, 거기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그 벌로 치매에 걸린 것이다. p.54
프로파일러인가 뭔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연쇄살인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더욱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다음 희생자를 집요하게 찾게 됩니다....다시는 살인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면 자살까지 시도합니다. 그정도로 강합니다.'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
p.58
살해당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그런 일만은 당해서는 안 된다. p.64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p.142
몇 년 전, 치과에 갔다가 몰입의 즐거움 어쩌고 하는 책이 있기에 대충 읽었다....오래전의 내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골몰하며 얼마나 깊이 몰입했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얻었는지를 당신이 안다면, 몰입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안다면, 그 입을 다물거야. 몰입은 위험한 거야. 그래서 즐거운 거고. p.149
...'미래 기억'은 앞으로 할 일을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치매 환자가 가장 빨리 잊어버리는 게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리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미래 기억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가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바로 미래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알츠하이머에 걸린 내 뇌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오래전 과거는 생생하게 보존하면서 미래는 한사코 기록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내게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듭하여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보니 미래라는 것이 없으면 과거도 그 의미가 없을 것만 같다.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왜냐하면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증 치매 환자와 짐승이 뭐가 다를까, 다른 것이 없다...오디세우스는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어떻게? 미래를 기억함으로써, 과거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p.157-158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한 남자가 찾아와 만났다. 기자라고 했다. 그는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진부함이 나를 웃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