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김채원의 행방불명

by 가장귀해하고

낯선 공간에서의 생활은 어엿한 나이가 무색할 만큼 무척이나 눈치가 보인다. 학교만 익숙한 나에게 교육청 직속기관에서의 생활은 하나하나 낯설다. 애들만큼이나 자유롭고 편한 교사의 복장과 연구사, 연구관의 정장 차림. 애들의 언어가 스며든 명랑한 언어와 훨씬 정돈된 언어. 아이들의 시끌벅적하고 산만한 행사와 격과 식을 엄격히 갖춘 행사. 인사하는 방식마저 너무 달라서 어색하다. (업무상) 이웃들을 방문하여 인사하는 것도 민망한데, 다들 업무하다 말고 기립해서 경청해 주니 예상을 상회하는 환대에 부끄러움이 배가 된다.

기존 선생님이 안절부절못한다고 내게 말해줄 만큼, 무엇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몰라 한참 헤맸다. 내가 어색한 만큼, 기존에 계시던 분들은 화기애애한 듯 보였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인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눈치껏 움직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위화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그래도 한두 달 정도는 가야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매년 사람이 바뀌면서 학년 초 어색함은 있지만, 이건 익숙한 어색함이 아니라 생경한 어색함이다. 그 낯선 감정은 어떤 아이돌 한 명을 떠오르게 했다.


몇 년 전 용산역 근처에서 일행들을 만난 적이 있다. 카페를 찾았는데, 그날따라 비가 와서 어딜 가나 사람이 가득했다. 그나마 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가서 앉았는데,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뭔가 다들 우리 일행을 한 번씩 힐끔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거긴 당시 아이즈원(지금은 르세라핌) 아이돌 김채원의 생일 카페였다. 일행들이 그걸 파악하고 알려주길래, 나도 오늘부터 팬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념 코스터를 나도 받을 수 있냐고 하자 티가 많이 나는지 거절 당했다. 일단 들어오는 걸 막진 않았는데, 앉아 있을수록 가시방석이었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면박을 주진 않는데,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어쩌면 그때와 같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공간에 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이질적인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텃세를 부리지 않지만(오히려 환대를 해주는데), 낯선 공기에 스스로 짓눌리고 마는 진입 과정인 셈이다.


새로운 집단에 합류하며 초반에 주저되고 때로는 물러나고 싶기까지 한 괴로움을 느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경험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숱한 서사에서도 이러한 통과 의례 과정을 자주 다룬다. 얼마 전에 본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세계에서 모험하는 인물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다.


1. 기존 세계에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 주인공 (이사하여 새로운 곳으로 가는 치히로)

2. 낯설고 이상한 세계에 진입함 (신들이 찾는 여관)

3. 이질적인 사람은 인정 받지 못하고, 주인공은 적응을 어려워하고 힘들어 함(인간 냄새가 난다고 배척받음)

4. 새로운 세계의 친구들, 조력자들이 세계의 규칙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줌(하쿠, 린 등이 적극 도움)

5. 어려운 일을 해내어 인정 받음 (모두가 오물신을 구하고 인정 받음)

6. 새로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함 (폭주하는 가오나시를 진정시킴)

7. 성장한 것을 보여주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함 (엄마아빠를 찾아냄)

8. 성장의 흔적을 가지고 기존 세계로 복귀함


이러한 전형적인 구조는 영웅의 일대기, 영웅의 여정 구조라고 해서 신화에서도 자주 반복된다. 신화의 특성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성이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삶의 어떤 단계를 보여준다. 추상적인 ‘성장’을 살이 붙어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오래된 표현 방식이다. 이에 비추어보면 내가 겪고 있는 이 이질감도 나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물론 통과의례와 성장은 완전히 같은 의미로 볼 수 없다. 작중에서도 모든 인물들이 집단에서 건강한 적응을 잘 해내는 건 아니다. 제니바를 만나기 전 가오나시는 극중 배경인 온천장에만 같이 있고, 그들을 따라하긴 하지만 어울리지 못했다. 하쿠는 기존 세계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로 새로운 공간에서 살았다. 단군 신화에서 결국 인간 전직을 포기하고 산으로 돌아간 호랑이처럼, 이야기의 모퉁이에는 융화하지 못해 새로운 집단에서 끝내 일원이 되지 못한 존재들도 존재한다.


전형적인 이야기 문법을 기대하고 관람하는 영화와 달리, 이 도입부를 가진 현실 서사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나도 모르겠다. 끝끝내 주변만 맴돌다 떠날 수도 있고, 구성원이 되어 적극적으로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 꼭 훌륭한 구성원으로 인정 받아야 해피엔딩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김채원의 공식 팬클럽은 되지 않았어도, 여러 콘텐츠에서 마주할 때마다 내적 친밀감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반가움이라는 건 반복되는 일상과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니지만, 쌓인 시간과 추억이 환기해주는 즐거운 마음이다. 부디 지금의 이런 헤맴도 알 수 없는 시점의 반가움으로 익어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