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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Dec 30. 2018

S#9. “정성적인 접근보다 정량적인 접근”

총 7 어절, 17음절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는 접근이 필요하다.

14.

 넷째, 객관적인 입증자료를 확보하자.


 법원에 가서 재판 방청하다 보니, 내 저작물이 이미 다양한 매체와 장르로 발표되었다는 것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그동안의 ‘판례’에서는 짧은 분량의 ‘한 문장’을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나의 저작물은 결코 짧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했다. 정성적인 접근보다는 정량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무척 당황했다. 나의 감정과 사상을 담은 표현인데 ‘짧고 길다는 분량을 기준’으로 저작물 여부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 가수들의 ‘노랫말을 활용한 광고 문구’와 개그맨들의 ‘유행어’가 생각났다. 특정 가수나 개그맨의 수고로움을 통한 창작물이었고, 대중의 인지도를 얻어 폭넓게 사용되고 있으나 원저작자에게 허락은커녕, 출처도 밝히지 않고 자신의 영리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어 원저작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풍부한 문화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작권법 보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빨랐고, 이러한 점을 악용해 우리 사회가 ‘저작물’을 대하는 태도가 날로 가벼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내 사건처럼 대기업 등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들이 저작물을 존중하는 태도를 상실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때 앞서 말한 G 변호사님이 “이게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는데요, 서점에 가서 짧은 시들 한 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정민 씨 저작물보다 분량은 짧더라도 한 편의 시로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눈이 번쩍 뜨였다. 서점에 갈 필요도 없었다. 당장 내 방 책꽂이에 있는 수십 권의 시집들을 펼쳤다. 내 저작물인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총 7 어절, 17음절로 이루어진 문장과 분량이 같거나 더 짧은 저작물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저작물이 아니라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유명한 시인의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고은 시인의 시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은 9 어절, 17음절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는 5 어절, 13음절로 이루어져 있었다. 짧지만 시인이 담고자 했던 감정은 충분히 표현되었다.


 사고가 확장되었다. 일본의 ‘하이쿠’가 떠올랐다. 하이쿠는 5·7·5의 17음 형식으로 된 일본 문학 정형시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였다. 해학적이고 응축된 어휘로 인정(人情)과 사물의 기미(機微)를 재치 있게 표현하여 일본 시가문학의 커다란 장르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하이쿠’를 저작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 인정받아 2015년 4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환대하는 의미로 백악관에서 하이쿠를 읊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k_eunjung77, @chorong_stationery, @junbong.hwang, @luscious_99 님 인스타그램


 고은, 나태주 시인의 두 시와 일본의 하이쿠가 SNS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검색해 보았다. 이게 중요했다. 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단순히 분량이 같거나 길다 뿐만 아니라, 기존 저작권법에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매체에서 저작물로 인정받는 작품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어야 했다.


이미지 출처 : @_hana_land, @gksmf1231, @purepark900, @yunqi_hao 님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두 시인의 시와 하이쿠는 자신의 손글씨를 뽐내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캘리그래피’와 예쁘게 디자인된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내 저작물도 제주도 유동 카페와 피고인 대기업 등이 사용한 방식인 ‘네온사인’으로 쓰이기 이전부터 동일한 방식으로 SNS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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