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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Jan 19. 2019

S#18.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내가 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은 판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침해 맞다.”

24.

 앞서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 중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평가’ 결과를 보며 OECD 회원국 평균은 54%인데, 대한민국은 27%라는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은 평균보다 매우 낮다. 최근 사법부 소식을 접하다 보면 이후 조사에서는 더욱 낮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생활 대부분의 요소가 법이 정하고 있는 규칙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비해 대부분의 국민은 ‘법’을 잘 모른다. 나 역시 재판 한 번 했다고 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재판 진행하며 국민으로서 사법부의 노력과 고민을 목격한 것은 긍정적이었다.


이번 브런치의 내용은 소송 전체 과정 중 2쪽에 초록색으로 표시해 둔 단계의 이야기다.


 2018년 6월 21일 오전 10시 20분 재판. 회사에 오전 반차 내고, 9시 40분경 여유 있게 법원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오늘 하루 법원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내 사건 앞에 진행되는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미리 법정에 들어갔다. 판사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기 때문에 조금 일찍 들어가 의중을 살피고자 했다. 재판부의 의중을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담당 판사님은 나이 지긋해 보였는데, 그동안 재판 방청하며 관찰한 판사님 중에서도 유독 더 어른이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높은 분인가?’라는 궁금증과 ‘과연 나이 많은 판사님이 SNS와 네온사인 활용 홍보효과를 어떻게 이해하실까?’ 걱정되었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판사님의 성함을 검색해 봤다. 그제야 상황이 조금 이해됐다. ‘원로법관’이라는 제도가 있구나.


 2018년 3월 재판 일정 변경된 이후, 내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액전담 집중심리 민사1003단독 재판부에 재배정되었다. 일반적인 민사소액 사건이 1~2분에 한 사건씩 재판 진행되는 것에 비해 ‘민사소액집중심리부’는 20분 간격으로 3~4건의 사건 재판이 일정표에 나와 있었다.     


25.

 재판에 대해 쓰기 전에 원로법관과 민사소액집중심리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면 내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사 소액 저작권 관련 사건 진행하는데 참고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 법원은 2017년 1월 31일 보도자료에서 2017년 2월 정기인사 때 원로법관 제도가 시행되는 것을 밝히며 “경륜과 실력을 갖춘 원로 판사들이 정년까지 봉직하며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1심 재판을 담당함으로써 사법서비스의 품질과 국민의 재판 만족도 제고가 기대된다.”라고 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원숙한 법관들이 법관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면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확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법관인사규칙 제11조의3(원로법관)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대법원장은 법조경력 30년 이상인 판사 중에서 원로법관을 지명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라 원로법관을 지명하고자 하는 때에는 법관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③ 대법원장은 원로법관의 예우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     


 내 사건의 판사님도 지방법원장 출신으로 2017년 2월 9일 법원 정기인사 때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원로법관으로 재판 맡게 된 분이셨다.


26.

 민사, 소액 집중심리부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 기사를 먼저 읽어보면 이해가 쉽다.


<돈과 원통함은 꼭 비례하지 않았다> (2018.01.28., 한겨레, 현소은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96497


 실제 법원에서는 한정된 사법 자원으로 접수된 사건을 모두 처리해야 되다 보니, 소액사건의 경우 매우 짧은 시간에 진행, 판결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재판부 변경 전까지는 내 사건이 1~2분 사이에 재판 진행되는 줄 알고 크게 놀랐다. 진짜 듣던 대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재판에서 패소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재판부가 ‘소액 집중심리부’로 변경된 후, 관련 내용을 찾다 보니 사법부가 이와 같은 고민이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사소액재판은 신속성과 소송경제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재판절차이지만, 적정하고 공평한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최근에 우리 법원이 추구하는 사실심 충실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울러 국민들의 소액재판에 대한 사법서비스의 접근이나 편의를 높이는 것에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민사소액재판의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2016.12.01.,사법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소개 내용 中


 실제, 위 연구보고서에서 ‘민사소액재판의 실무 운영과 중장기적 제도 개선 방안’으로 제언한 내용을 보면 앞서 내가 소개한 ① 나홀로 소송에 대한 조력 시스템 마련안으로 전자소송의 활성화가 있으며, ② 소액집중심리재판부의 확대와 사무분담 개선도 있다.     


게다가 아래 기사처럼 재판 경험이 많은 원로법관을 소액사건 집중심리에 투입하는 것이다.      

<[법원의 속사정] 소액사건 집중심리 위해 법원장급 투입 ‘고군분투’> (2018.07.25., 서울신문, 이민영·허백윤 기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726012004#csidx01d4ff3587f0aa58a951cdb1ea91d16     

 “대법원은 또 지난해 수도권 소액 전담 재판장 10명으로 ‘소액재판 개선 연구반’을 운영했다. 소액재판의 가장 큰 문제로 트위터(140자)보다 짧게 이유 없이 주문만 적는 판결문이 지적됐다. 향후 항소심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이유를 적자고 권고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소액전담 판사는 “판결문에 이유를 쓰는 게 원칙이 돼 버리면 연 수천건에 달하는 사건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하소연했다. 한정된 사법 자원 안에서 판사들의 혹사로 겨우 유지되는 제도의 효율성이 작은 변화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판 진행에 있어 이런 내용은 몰라도 크게 상관없을 수 있다. 다만 당사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아주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나의 경우에도 작은 변화 하나, 하나에 촉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그래야 한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기존 언론 보도로 축적된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은 괜한 억측과 오해를 낳고, 결국 당사자인 내가 스트레스받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피로감이 축적된다. 선고 이후, 판결이 못마땅할 경우 ‘항소’하면 된다. 괜스레 재판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만 쌓여 장기적으로 매우 안 좋다고 생각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온 힘을 모아도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면 안 된다. 내 사건의 판결문은 총 3장으로 민사 소액사건으로는 상당히 긴 분량의 판결이다. 앞으로 쓰겠지만 ‘판례’를 만들기 위한 나의 의지와 노력을 재판부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전달했으며, 이 과정에서 판사님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7.

 오전 10시가 지났지만 이른 시간이라 앞 사건 원고와 피고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와 내 남편을 본 판사님은 “어떻게 왔느냐?”라고 물으셨고, 10시 20분에 진행되는 저작권 관련 사건 원고라고 이야기드렸다. 내 사건의 소장과 입증자료를 열어보셨다. 입증자료 1번으로 낸 졸업증명서가 법정 내 설치된 프로젝트 화면에 띄어졌다.


 예술가 중에는 정규 교과과정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내가 예술학교 졸업증명서를 제출한 이유는 내가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보낸 시간과 노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소송을 준비하다 보면 내가 예술가로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혹은 아마추어 예술가라서 등 ‘짜증 나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인한 말들에 스트레스받을 필요 전혀 없다. 내가 나 스스로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마련하면 된다. 나에게는 그중 하나가 예술학교 졸업증명서였다. 어린 나이에 예술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고, 입시 준비하고, 합격 후에도 나름의 고민과 고뇌로 실습 작품을 만들고, 또 상당한 제작비 쓰며 졸업 작품까지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전공한 장르와 매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르를 통해 나의 생각과 표현을 하기 위한 학습의 시간이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졸업증명서를 냈다. 실제 나는 대학을 졸업하며 ‘과연 내가 이 학자금 대출을 다 갚는 날이 오긴 올까?’ 생각했었다. 등록금만 해도 상당했다. 만약, 학교 교육 내에서 예술 전공하지 않은 이라면 자신이 창작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어떤 배움과 노력의 과정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실습하고 성취한 자료들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제출해도 좋을 것 같다. 쉽진 않겠지만 그런 노력이 꼭 필요하다.


 그때 피고 측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왔다. 판사님이 그에게도 “무슨 사건이냐?”라고 물어봤고, 원고와 피고가 모두 왔으니 재판 먼저 하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갑자기 시작되는 재판에 떨릴 법도 했는데, 그동안 수많은 재판을 봐서인지 ‘나도 드디어 변호인석에 앉는구나’ 생각하며 덤덤하게 원고 변호인석에 앉았다.


 판사님은 나에게 “사건에 대해서 말해 보세요.”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의 억울함이 툭, 터져버렸다.


 재판 준비하는 동안 했던 변론 연습이 꽤 쓸모 있었다. 개인소송 진행하며 스스로 변론해야 되는 분들이라면 참고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다만 입학 당시에는 연극, 연기 전공과 동일한 시험을 봐야 했기 때문에 흔히 ‘연영과 입시’라 불리는 어두운 소극장에 핀 조명받으며 ‘독백 연기하는 시험’을 봤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선배들의 대학 연극학과 입시 후기를 들으며 ‘나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그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이 아주 조금 되어 있었다. 나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능숙하지 않으나 몇 가지 주의했던 사항만으로도 재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나왔다.  


 당사자가 스스로 변론한다는 것은 전문성 가진 법조인이 아니라는 단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진정성 가지고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부에 직접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진정성이 실제 재판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격하게 작동할 위험’이 있는데, 이 상황에 ‘어떻게 하면 메시지 전달력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좋다.


 나는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① 사건에 있어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먼저 분류했고, ② 그 내용을 암기한 것이 아닌, 주요 키워드만 숙지하여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하지 않도록 했으며, ③ 방청 보며 관찰한 법정 풍경을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했다. 실제 연극영화과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나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내 사건에 조금이라도 귀를 더 기울일 수 있도록 ‘장황하지 않게, 피곤하지 않게’ 말해야 한다.


 재판을 보다 보면 변호사들이 사건 관련 정보가 적힌 종이를 들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지양한다. 가급적 당사자의 경우 떨리기는 하겠지만,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세 가지 방법에 유의하여 판사님께 담담하게 종이를 보지 않고 이야기해 나가길 권한다. 눈물이 나면 눈물을 흘리면 된다. 나 역시 지금 생각해 봐도 결코 멋있지 않았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다. 재판이 모두 끝난 후,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나와 피고 측 변호사 각각의 변론 후, 내가 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은 판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침해 맞다.”

     

“침해 맞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었는가. 다만, 판사님은 원고인 나와 피고인 대기업의 변론 맡은 변호사에게 원만히 ‘화해할 것’을 권유하셨다.


판사님은 나에게    


“얼마 받고 싶냐?”

“재판부 결정에 따르겠다.”

“그래도 원하는 금액이 있지 않겠느냐?”

“가능하다면 청구한 금액 전부를 받고 싶다.”

“(1000만 원 중) 500만 원 어떠냐.”

“침해만 인정된다면 500만 원 좋다.”


 판사님은 피고 측 변호사에게 “500만 원 어떠냐?”라고 하셨고, 피고 측 변호사는 피고와 이야기 나눠 본 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다음 재판일이 2018년 7월 26일로 정해졌고, 나는 판결문을 받지 못하더라도 ‘침해’를 인정받았으니 사건이 이대로 잘 마무리되길 바랐다.


 오전 반차 써서 오후 2시까지 회사에 가면 되었다. 그런데 오전 11시도 안되어 재판이 끝나는 바람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재판 준비하며 예민해져 있었던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머리가 엉망이었다. 평일 오전에 미용실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건 발생한 2017년 여름, 한 여름 무더위도 느끼지 못할 만큼 화가 났었고 그 이후에도 재판 기다리며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드디어 첫 재판이 있었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침해라는 말을 들었다. 우선 여기까지 잘 해냈다고 생각하며 미용실 의자에 앉아 좀 쉬었다.


2018년 7월 23일에 재판부로부터 온 ‘화해권고결정’


 그 후 재판일을 3일 앞두고 2018년 7월 23일에 재판부로부터 ‘화해권고결정’이 왔다. 화해권고결정은 ‘화해권고결정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하지 아니하면 이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가지며,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는 내용의 문서였다. 추가로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원만히 해결하고자 했던 나는 화해권고결정에 따르기 위해 7월 26일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피고로부터 온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

 그런데 7월 26일, 법원으로부터 추가로 재판이 더 진행된다는 변론기일통지서가 왔고 4일 후, 피고로부터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받았다. 재판부가 침해를 인정했는데, 이의 신청을 했다고? 나는 독이 올랐다. 작년 여름부터 모아둔 피고와 관련된 모든 자료 다시 꺼내 추가자료 제출 준비를 시작했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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