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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Jan 20. 2019

S#19. “두 번째 재판, 나는 꼭 이겨야 했다.”

피고를 단념시키기 위해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자료를 ‘빠르게’ 제출했다

28.

이번 브런치의 내용은 소송 전체 과정 중 2~3쪽에 초록색으로 표시해 둔 단계의 이야기다.


 피고로부터 이의 신청서를 받은 후 차분히 생각했다. 어떤 근거로 ‘이의’ 제기했을까? 이미 재판부가 ‘침해’라고 했는데, 그것을 반박할 자료를 추가로 찾은 것인가? 흥분 가라앉히고, 우선 피고 측이 제출하는 자료 보고 추가로 대응하자고 결정했다.


피고 요청사항은 화해권고결정 1쪽 결정사항 제 1항에 표시된 원고의 '저작권 사용대가의 명목으로' 를 빼달라는 것이었다.


 2018년 8월 23일 두 번째 재판이자 마지막 재판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2별관 207호, 첫 재판과 같은 법정이었다. 피고 측에서는 두 번째 재판 전, 아무 자료도 추가로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 당일에도 없었다. 다만 그들이 요구한 것은 ‘화해권고결정’에 적힌 ‘저작권 사용대가의 명목으로’라는 말을 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럼 바로 500만 원을 지급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바로라...’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1,000만 원 전부 주면 저 말 빼 드릴게요.”


나도 내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판사님께서는


“500만 원도 많다. 그리고 저 말이 빠져도 청구취지의 내용이 있으니 침해를 인정받은 것이다.”


라고 설명해 주셨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재판 준비로 판례 찾으며, 결국 소송이란 ‘먼저 진행된 사건의 판결 결과를 원고와 피고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 자신의 주장을 견고하게 만들어 다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저작권 사용대가의 명목으로’라는 말이 빠진다면 나중에 나와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지금의 내 사건이 원고인 나의 의도인 ‘창작자를 존중해 달라는 것’은 없어지고, 손해배상액 500만 원만 남을 여지가 있었다. 가급적 구체적으로 피고의 저작권 침해 행위를 명시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1,000만 원을 받는다면 ‘저작권 사용대가의 명목으로’라는 말이 빠져도 내가 주장한 내용을 100% 인정받는 것이니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었다.     


 판사님께 다시 한번 “1,000만 원을 받을 수 없다면 저작권 사용대가의 명목으로를 뺄 수 없다”라고 말씀드렸다. 나에게 청구취지의 기입된 내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는 판사님께 “저도 무슨 말씀 하시는 것인지 충분히 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제가 왜 싸웠는지 아시잖아요? 피고의 행위는 영리를 위한 명백한 침해입니다. 침해로 인정받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판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침해가 중요하냐?”

“네, 침해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 손해배상액이 많이 적어지는데도 괜찮나?”

“네,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 내 사건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소송 진행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보통 돈으로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사례가 많지만, 여러 재판 방청하다 보면 ‘불쾌함과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예도 많았다. 나의 경우는 애초에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 ‘인정’이 중요했다. 내 사례가 한 번쯤 싸워볼 만큼 입증자료가 많았고, 직장을 다니니 정기적인 수입도 있었다. 돈이 없으면 싸우기 힘들다. 작업만 하는 예술가들만큼 불안정한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싸워서 이겼으니 당신도 억울하면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말하려던 게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의 판례를 남길 수 있다면 다른 예술가들은 유사한 피해를 경험했을 때 재판이라는 피곤한 과정 겪지 않고도 적당한 선에서 ‘합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싸웠다. 나도 ‘판례’만 있었다면 소송까지 하지 않고, 저작권 인정받은 후 피고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피해사례 중에서도 꽤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나와 피고 측 변호사의 변론이 끝난 후, 판사님은 추가 재판 없이 ‘선고’하겠다고 하셨다. 판결선고기일은 2018년 9월 4일로 잡혔다. 


 재판장에서 나온 나는 앞으로 이 소송이 어떻게 되려나, 분명 나에게 유리한 상황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었다.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피고 측 변호사에게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고 측 변호사에게 말했다.


“제가 왜 싸우는지 아시죠? 만약 추가로 재판이 더 진행될 경우, 저도 변호사 선임해서 형사소송까지 진행하겠습니다. 피고에게 전해주세요.”     


 앞에서도 썼지만 내가 민사소송 1심에서 소액으로라도 저작권을 인정받았는데, 피고가 항소해서 2심을 진행한다면, 나는 형사소송 고소장을 접수할 계획이었다. 피고 측은 법인이기 때문에 대표이사가 나서야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사건마다 다르고, 내가 접수한 고소장이 기각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상황이고, 피고 측 실무진 역시 그런 불투명한 과정은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싫다면 1심 판결에 승복하고 사건 종결지으면 됐다. 상대방을 먼저 지치게 만드는 것은 소송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만약, 혹시라도 내가 2심에서도 1심처럼 ‘저작권 침해 인정을 받기 위해 나 홀로 민사로만 소송을 진행한다’라고 피고가 생각하면 안 됐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재판이 끝나고, 피고 측 변호사에게 내 계획을 분명히 전하는 것 역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29.

 나는 집에 돌아와서 친구인 변호사 E에게 만약 2심이 진행된다면 추가로 제출할 자료가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변호사 E는 “2심 말고, 지금 참고서면으로 제출해.”라고 이야기해 줬다. 개인 소송하면서 가장 답답한 것이 소송 절차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변호사 E는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절차 안내로 큰 도움을 줬다. 예술가나 창작자를 대상으로 한 법률지원 서비스에 상담뿐만 아니라 이런 절차 안내가 포함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고서면은 재판이 끝난 후 부족하거나 보충해야 할 사항을 참고용으로 기재하여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변론 종결 상황에서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작성양식은 먼저 공유한 소장과 같다.


 나는 피고가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상황부터 이미 추가 자료 제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 재판에서 재판부의 의중을 충분히 살폈으며, 피고 측이 항소하지 않도록 압박이 필요했다. 내가 참고서면을 제출한다면, 피고 측도 위임한 법무법인에 대응을 요청할 것이라 예상해 참고서면을 두 번 나눠서 제출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내가 생각한 첫 번째 참고서면 제출일은 마지막 재판 바로 다음 날이었고, 두 번째 참고서면은 피고로부터 참고서면 받은 당일로 계획했다. 피고를 단념시키기 위해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자료를 ‘빠르게’ 제출했다. 재판부가 해당 참고서면 2건을 모두 보지 못하더라도 ‘피고 측을 피곤하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참고로 나의 예상은 맞았다. 피고 측도 내 참고서면에 대한 반박 내용이 담긴 참고서면을 제출했다.


 내가 갖고 있던 주요 자료는 ① 사건 발생지인 백화점 매장과 연결된 지하철역의 하루 유동인구 수와 연간 매출 목표였다. 이 수치는 과거 해당 백화점 매장이 개장하는 시점, 피고 측 홍보 목적 기사에 정확하게 쓰여 있었다. 피고 측의 매장 홍보 기사가 입증자료였다. 피고는 2009년 8월, 해당 백화점 매장을 개장하며 언론에 “일평균 승하차 인구가 11만 명에 이르는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어 고객이 꾸준히 유입되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라고 했고, 해당 백화점 지점 연매출 목표가 1,000억이었다.     


② 피고 측이 내 사건 외에도 저작권과 관련된 재판 이력이 있었는지 찾았다. 대법원 판결을 받은 제법 유명한 판례가 있었다.


③ 앞서 쓴 적 있는 저작권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아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한 법정허락 간소화 절차’ 보도자료였다. 국무회의 결과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식적으로 보도자료로 배포한 내용이었다. “법정허락 간소화를 통해 더욱 많은 고아저작물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경제혁신’과 ‘문화융성’에 기여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입장도 그대로 적었다. 


 그 외에도 덜 중요한 자료가 있었는데, 주요 자료와 적절히 배치하여 활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제출자료에 원고인 내 생각을 강조했다. 참고서면의 마지막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창의 노동을 인정하는 유일한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도 저작권자와 사용자가 공평하게 저작물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을 개선하며 정책을 마련, 추진하고 있습니다. 만약, 피고의 침해 행위가 엄중히 처벌되지 않는다면 유사 기업들도 저작권법을 준수하지 않고, 창작자의 노동을 가볍게 평가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정부의 노력과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피고는 대한민국 대표 유통기업으로서 저작권 문화 조성을 위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저작권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손해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두 번째 참고서면까지 제출한 후, 나는 잤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불태웠다’는 표현 말고는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잠깐 이런 생각도 스쳤지만, 깊게 생각할 힘이 없었다. 너무 피곤했고, 졸렸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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