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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마미 Jul 31. 2019

뱃 속에 거지는 없다!

철 지난 유행어를 아직도 쓰고 있는 엄마들에게 고함~

  어느덧, 2019년의 여름이 한복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연일 뉴스에서는 앞다투어 떠들어댑니다. 습기 머금은 장마는 지나갔다고, 이제 본격적인 땡볕과 열대야가 당신을 찾아가 괴롭힐 것이라고 말이지요. 어떨 땐 이렇게 미리 알게 된 날씨정보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 '건강을 챙겨라' 는 친절한 조언처럼 들리기 보다는, 으름장 놓는 소리로 들려서 외려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일기예보를 들은 날 더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봐야, 여름이 여름답게 더운 것을, 그 누구를 탓하겠어요.


  여름이 더워서 괴로운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그(또는 그녀는) 겨울이 춥다면서 괴로워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더위와 추위는 '내가 이렇게 느낀다'하고 생각하므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누군가에게는 30도만 되어도 '더워 죽겠다'할 정도의 열기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고보면, 같은 현상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기 마련인 겁니다.


  결국, 제 아무리 객관적인 정보-이를테면, 하루동안의 기온을 알려주는 일기예보와 같은-도 그에 대해서 어떤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인식될 겁니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자녀가 무심코 던진 말 할만디(객관적인 정보)가 엄마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인해서 어떻게 변형, 왜곡되어 인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종국에는 관계를 해치는, 무시무시한 흉기가 되기도 한다는 말씀도 미리 드리고 싶네요.

(사진 : 여름방학 맞이 엄마표 간식시리즈 중 호떡)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저의 두 아이들은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늦잠자기는 필수코스이지요. 식사시간대 역시나, 아이들은 자기네들의 배꼽시계에 맞추어서 자유롭게 오고 갑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식사량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알아서 원하는 만큼 먹고, 알아서 원하는 만큼 안 먹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간식은 안 먹느냐? 아주 꼬박꼬박 챙깁니다. 이런 멘트와 함께 말이지요.


  "엄마, 오늘 간식은 뭐에요?"


  학교도 안 가는 방학인데, 몸을 활발히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도, 아이들의 신진대사는 학기중 생활리듬과 똑같은가 봅니다. 그 속을 누가, 어찌 알겠습니까? 분명 밥을 금방 먹고 돌아섰는데, 간식을 찾습니다. 맛있는 것을 부르짖습니다. 급기야 냉장고 문을 하루에도 수 십번씩은 열어대는 듯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엄마, 뭐 먹을 거 없어요?"


  엄마인 내 눈에는 시원한 먹을 것들이 냉장고 안에 넘쳐나는대도 말이지요.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과일들이 씼어져 있고, 급기야 손질되어 유리찬기에 아름답게 담겨져 있는데도 말이죠. '얘들아, 나를 집어서 먹기만 하면 돼'하고 말을 건내는데도 말이죠. 시원한 보리차와 이온음료, 우유가 찬기를 내뿜으며 서로를 마셔달라고 손짓하는데도 말이지요.


 상황이 이 즈음되면, 엄마의 반응으로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눈쌀을 찌푸리며 아이를 쏘아본다든지, 짜증을 내며 아이에게 '참아! 그만 좀 먹어'라고 말하는...


실은,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되받아치고 있습니다.


"먹을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 거지?"


"집에 있는 거 말고 다른 걸 먹고 싶다는 말인 것 같네...'


  만약,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엄마(부모)라면 방학중인 아이들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꼭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단지, 아이는 엄마인 당신에게 '객관적인 정보'로서 말 몇 마디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엄마인 당신은 자신의 오감을 통해서 그 정보를 받아들였고요.

  그런데, 주관적인 판단과 해석이 붙게 되면서 관계를 망가뜨리는 말들이 엄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아이의 말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과 해석이 덧붙여졌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러한 말들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 여름방학 맞이 엄마표 집밥 시리즈 중, 매운 감자 덮밥 조리중)

  엄마는 단지 아이의 말을 귀로 들었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그 '객관성'에서 시작해야합니다. 아이를 관찰한 결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아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엄마의 진심이 아이의 마음에 닿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엄마의 깊은 사랑이, 따뜻한 마음이 아이에게 연결 될 수 있으려면 엄마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아야합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의 오감을 통해 관찰된 사실에다가 나름의 주관적인 해석을 덧댑니다. 그리고는 부정적 판단이 가득 섞인 말을 아이를  향해 던져버립니다.


"아까 뭐 먹었잖아!", "먹은지 몇 분 지났다고 또 먹을 걸 찾냐?!" 그리고는 급기야 이런 말도 서슴치 않죠.


"너는 뱃 속에 거지가 들어앉아있냐!"

"전기세 나와! 냉장고 문 좀 그만 열고 닫아!"

"으이그...내가 못 살아! 증말!"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당신 아이의 뱃 속에 '거지'는 없습니다. 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단지, 무언가 먹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뿐이지요. 당신은 결코 뱃 속에 거지가 있는 자녀를 낳지 않았거든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냉장고 문이 수십 번 열고 닫혀도 전기세가 눈에 띄게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단지, 냉기가 조금 손실될 뿐이지요. 요즘 냉장고들은 열효율도 좋아서 전기세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당신은 냉장고를 구입할 당시, 가격과 함께 열효율을 꼼꼼히 살폈을 니까요.


  엄마인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향해 내뱉는 말들은 모두 철지난, 아주 오래된, 그래서 이제는 식상하기까지한 유행어들 이랍니다. 그 유행어는 다름 아닌, 우리가 아이였을 때 부모로 부터 들어온 말들입니다. 그들이 자녀인 우리들을 양육해온 방식이랍니다.


  '유행어'라는 단어를, '정서적 대물림'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하면 좀 더 학문적이면서 유식한 듯한(?) 어감이 더해지겠지요.  

사진: 된장국에서 찾은 사랑(표현 재료;대파)

저 역시 어렸을 적에 그런 유행어를 자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가 되면 으레 그런 용어와 억양들을 쓰는 줄 알았어요. '부정적인 대물림'이었던거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부모멘트들을 거의 대부분이 친정부모님을 닮아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리고, 의식하기 전까지는 그런 말들이 내 입에서도 무심코 내뱉어졌지요.



아이 다섯을 키우던 친정엄마는 방학이 되면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으이그! 얼른 방학이 끝나부러야제. 내가 못 살 긋다!"

"똥구멍에 해 받칠 때까지 쳐 자고 자빠즜냐! 얼른 안 일어나냐! 얼른!!!"

"냉장고 문 좀 그만 열고 닫어라! 전기세 나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맛있는 거', '먹을 거'를 찾는 자녀들을 향해, "느그들 뱃 속에는 그지가 드러앉았냐?!" 하셨지요.


밥을 먹고 돌아서서 곧바로 먹거리를 또 찾는, 요즘말로 하면 폭풍성장기에 있었던 아이들을 향해서 이런 유행어들을 수도 없이 쏟아내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아이가 한 마디씩만 해도 듣는 엄마 입장에서는 다섯 번이나 들어야 했으니 아마도 괴로우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한 감정과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겠지요.


게다가 엄마도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유행어들을 다시금 '재탕'하신 것이었을테고요.

사진: 여름방학 맞이 엄마표 간식시리즈 중, 김치전

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측은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전까지는 원망도 했어요. 부모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맛있는 거 찾는 딸에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가,


'엄마도 그런 말씀을 우리가 미워서 하신 건 아니니까...'라고 생각을 바꾸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 오히려 아이 다섯 키우며, 시부모 봉양에, 차가운 남편 내조와 시동생 수발까지 들었던 친정엄마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진: 여름방학 맞이 엄마표간식-꿀호떡(갈수록 잼믹스가 덜 남음, 내 음식 솜씨가 늘고 있다는 증거~^^)

그나저나, 이제 나는 엄마입니다.


방학 때마다 아이들의 기상시각은 학기중에 비해서 당연히 늦어집니다. 긴장해서 일어날 일이 없으니 그렇겠지요.


아이들의 식사시간도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에너지를 써야했던 학기중에 비해서 운동량이 줄었을테고 그만큼 벽걸이 시계보다는 배꼽시계에 더욱 귀기울인 탓이겠지요. 늦게 일어나는 것도 신진대사에 한 몫 할테고요.


이런 아이들의 상태를 엄마인 나는 그저 오감을 통해 관찰하기로 합니다. 우선은, 객관적인 정보로서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봅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어떤 생각, 느낌이 올라오는지도 잘 관찰합니다.


내 어린시절도 돌아봅니다. 초등학생인 둘째아이를 보며 나의 초등생 시절을, 중학생인 큰아이를 위해서는 중학생이었던 내모습을 떠올립니다. 나 역시 방학동안에는 뒹굴거렸고, 방학숙제도 뒤로 미뤘다가 벼락치기로 해냈던 아이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다보면, 내 아이들의 이런저런 방학중 천태만상의 모습들이 그저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갖는 일반적인, 공통적인 아이스러움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사진: 여름방학 맞이 엄마표 집반찬-돼지고기김치볶음

거기에 한 가지 굳은 결심도 해봅니다.


'울엄마, 울아부지가 쓰시던 철 지난 유행어는 이제 더이상 쓰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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