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타이틀을 향한 욕망>
도전은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제대로 된 가치가 발휘된다.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모 교수님과의 대화가 내 기억에 아주 선명하다.
“교수님, 제가 1억 드릴 테니까 저에게 몇 년만 교수자리를 주실래요? “
농담 섞인 내 질문에 교수님은 진심 섞인 농담으로 대답했다.
“좋다! 너 가져라! 일 안 하고 3년만 살아보자. ”
어렴풋하게 그의 생각과 성향을 짐작하고 있긴 했지만 교수님의 대답에 나는 놀랐다.
수업하기를 즐거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인상 깊었다. 수업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듯 했다. 연구였을까? 연구라면 책이나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했어야 하는데 그는 그러지도 않았고, 오로지 고전 읽기를 좋아했고 서예를 좋아했다. 그의 외모에서는 지위를 가진 자에게 들어가 있는 어깨의 힘 대신, 올곧지만 자유로운 그 만의 예술가적 기질이 풍겨져 나왔다.
이때의 대화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나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는 정년이 보장된 교수의 자리가 필요했다. 교수라는 자리를 얻어 남들에게 우월감을 표현하고 싶었고, 삶에 대한 나의 불안을 줄이고 싶었다. 그런데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에 다시 입학해 공부를 계속할수록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삶이 내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또 공부에 들인 오랜 기간의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박사수료를 하고 비정년교수의 삶이 꽤 오랫동안 펼쳐졌다. 운 좋게 선배 교수님과의 연이 닿아 주간에도, 야간에도, 방학에도 강의를 했고, 학생들로부터 내 강의에 대한 감동적이면서도 인상 깊은 평가들을 참 많이 받았다. 하지만 강의를 하는 동안 정년이 보장된 교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초조함과 자격지심이 존재했기 때문에, 서둘러 박사학위를 받아 임용이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삶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비정년교수, 겸임교수가 아닌 정년교수에게 주어지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박사논문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르지 않았고 그저 몇 년간을 꾹꾹 참아가며 박사논문을 썼다. 드디어 박사논문 발표회장에 섰지만 내 논문에 자신이 없었다. 박사논문 발표회장에서의 질문들이 모두 나를 향한 빈정거림과 비난으로 들렸고, 논문발표회가 끝난 후 한동안 내 감정은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요동을 쳤다. 선배들은 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며 그들의 경험담을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었고 나 역시 그들이 겪은 과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결심이 굳어지고 있었다.
순리의 본질은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놓는 과정에서 순리가 배워진다고 생각했고, 공부를 이제라도 그만두고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이름난 대학 정년교수’라는 타이틀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학문적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해도 일부의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었고, 설사 운이 좋아 쉽게 타이틀을 거머쥔다고 해도 끝까지 꾸준히 학문을 위해 성실해야 내가 원하는 타이틀에 걸맞은 삶을 살 수 있었다. 화려한 포장지를 향한 욕망과 한 번 도전했으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이, 맞지 않는 나를 오랫동안 공부에 매달리게 했고 그것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어 탐나는 완성품을 만들고자 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더 이상은 억지로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놓았다. 놓고 나니 다른 세상이 보였다. 내 욕심으로 보던 세상이 아닌 세상 속의 내 욕심이 보였고, 나에게 보이는 세상이 넓어지니 낯선 도전에 대한 용기가 생겼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익숙한 도전이 아닌, 낯설지만 내 안에 잠재된 나다운 욕망을 조금씩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대한 든든한 믿음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