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25kg이 빠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오래 있으면서 겪게 되는 부자유스러움이 답답했고 불편했다. 제시간에 맞춰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해야 하는 반복되는 삶이 답답했고,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피곤했다. 그랬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에 저절로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 후에는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도서관에 갔고, 드문 드문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부할 때 자유를 느꼈고 해방감을 느꼈다.
그런데 서울대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조직의 암묵적 질서에 나를 끼워 맞추어야 하는 상황이 다시 스트레스였다. 일정시간을 학교 연구실 또는 자료실에 앉아 공부를 해야 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그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여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공부라는 능력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나의 목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내가 욕망하는 목표를 향해 가지 못하면서 나와 맞지 않는 일상을 참아내기까지 해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고, 이 때문에 폭식하는 버릇이 더 심해졌다. 달달하고 자극적인 것이 입에 들어가면 순간적인 행복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뚱뚱한 몸에도 불구하고 식욕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또 먹은 것이 내일 아침에는 살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걱정에, 물을 억지로 먹고 먹은 것을 토해내면서 내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어야 했다. 2년 동안 먹고 토하기는 반복되었고, 이 과정에서 나의 몸무게는 겨우겨우 유지했었던 70kg대를 벗어나 90kg을 훌쩍 넘어버렸다. 90kg이 넘어서면서 몸무게를 마주 대하는 것이 두려워 더 이상 체중계에 올라서지 못했다.
어느덧 석사수료를 하고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쓸 때가 다가왔다. 사랑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테마로 논문을 쓰면서 정신분석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목차를 만들고 시간을 맞추어서 글을 써내고 어려운 정신분석학 책을 읽어내야 하는 일이 힘에 겨울 때도 많았지만, 쓰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해 내고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세상을 이해해 가는 일은 정말 흥미진진했고 즐거웠다.
석사논문 발표회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입을 옷이 걱정이었던 나는 옷장을 열어 제법 괜찮은 옷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옷이 없었다. 백화점으로 향했다. 정장 스타일의 옷이 필요했다. 백화점에 들어서기까지는 했지만 맞는 옷이 없어 점원으로부터 거절을 당하는 내가 상상이 되면서 걱정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옷이 필요했던 나는 두려움을 누르고 백화점 여성복 코너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한 점원이 나를 반기며 말을 걸어왔다.
“손님, 어떤 옷을 찾으세요? “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다. 내가 입을 만한 옷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녀의 안내를 받아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이 옷 저 옷을 내게 권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옷들은 90kg이 넘는 거구에 맞는 옷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옷을 건네받아 내 몸에 옷을 대어봤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몸이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랬다. 90kg이 넘어서며 내 몸무게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체중계에 올라가지도 못했고 전신거울도 쳐다볼 수도 없었고 쇼윈도에 내 몸을 비춰볼 용기를 내지도 못했기 때문에 내 몸의 변화를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더군다나 논문을 쓰는 내내 헐렁한 체육복이 입는 옷의 전부였기 때문에 살에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살이 빠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77 사이즈의 옷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체중계에 올라섰다. 72kg이었다. 20kg을 훌쩍 넘는 내 살들이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 있었다. 치열하고 독한 다이어트의 끝에서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숫자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다이어트를 놓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순간, 논문을 쓰면서 폭식이 점점 줄었던 내가, 논문을 쓰는 내내 힘겨웠지만 즐거웠던 내가 떠올랐다. 즐거운 몰입 덕분에 살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살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서 스트레스가 줄어, 결국 내가 원했던 목표에 나도 모르게 한 발 더 다가서게 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상적인 몸무게인 58kg까지는 14kg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 경험 이후 나는 살에 대한 집착을 놓으려고 애썼고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지금… 나는 20년째 58kg이다. 이후로도 집착을 놓은 자리에 여러 번의 기적이 찾아왔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다. 집착을 놓으면 기적이 보이고, 진짜 즐거움이 기적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