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까 비싼 옷을 입을 자격이 있다.

<엄마 돈을 탐내면 당하는 일>

by 나은진

24살의 나는 백화점에 있었다. 백화점에서 내가 자유롭게 입어볼 수 있는 옷들은 제한적이었다. 백화점에서 제일 큰 옷들조차도 맞지 않을 정도로 뚱뚱했기 때문에, 크게 나온 외투만이 내가 입어보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옷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대학생들이 입을 만한 옷들이 늘어서있는 백화점 매장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녔다. 누구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면 그 옷들을 입을 수 있는 몸매가 나에게는 없었으니까. 그들은 내가 구경만 하다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느 여성복매장 앞에서 갑자기 발걸음이 멈추었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외투를 본 순간 그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상상이 되었고, 발걸음을 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다.

“저…. 혹시….. 제가 이 옷을 한 번 입어볼 수 있을까요?”

“네, 들어오세요.”

매장 점원이 옷을 입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부디 다른 손님이 와서 ‘잠시만요 손님‘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가 내 곁을 떠나기를.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팔을 넣었을 때 소매에 끼여 들어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몸을 억지로 끼워 넣어 옷을 입긴 했는데 옷이 여며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머릿속은 겪어서 생긴 걱정과 겪을 것을 예상해서 생긴 걱정들로 가득 찼고, 외투를 입는 내내 불안으로 몸은 후들거렸다.

“어머! 예쁘신데요.”

점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내가 봐도 예뻤다. 본래의 나보다 날씬해 보였고 발랄하고 우아한 여대생 같았다.

“예쁜 것 같아요. 엄마와 함께 다시 올게요. “

여성복 매장에서 나와, 엄마에게 흥분이 되어서 달려갔다.

“엄마, 정말 예쁜 옷을 찾았어. 나 입은 모습 한 번 봐주고 엄마가 판단해 줘. “

“알았다.”

엄마가 같이 갔다. 그리고 엄마 옆에는 열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점원과 엄마 언니가 보는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외투를 입었다.

“예쁘지?”

“어.”

언니는 점원에게 옷값을 물었다. 50만 원이라는 금액을 들은 언니는 대뜸 나에게 말했다.

“네가 이런 옷을 입을 자격이 있니?”

언니의 말에 잔뜩 쪼그라든 나는 엄마를 쳐다보았지만, 엄마는 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갈 테니까 네가 결정해 주렴.”


결국 옷을 사지 못했다. 20년도 훨씬 넘은 이 일이 내 기억 속에는 아주 선명히 남아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의 감정이 나에게 오롯이 새겨져 있다. 비싼 옷을 입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는 언니의 말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무례한 말에 그 어떤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언니에게 무례함을 당하고 있는 나를 구해주기는커녕, 나에게 무례하게 대할 권리가 그녀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돌아서는 엄마에게서 지독한 배신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인간의 기억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겪은 사건의 내용들이 내 감정에 맞추어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그 감정만은 그때의 나에게는 진실이고 사실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이런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나를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경제적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었고 자칫 엄마에게 섣불리 맞섰다가는 경제적 지원이 끊길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는 그 어떤 내색 없이 참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정말 내가 비싼 옷을 입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은 풀어야 했다.


대체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나에게 묻고 또 묻고 책에게 묻고 또 묻기를 반복했다.

일단 자격을 운운하며 남을 비하하는 그녀의 말은 무례한 것이 맞았고, 비싼 옷을 입을 자격은 그 옷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설사 돈을 빌려서 사더라도 내가 갚을 수만 있으면 나에게는 비싼 옷을 입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이것뿐이던가.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이고,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옷이라면, 그 옷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그 옷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것이리. 이 사실을 알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그들의 행동에 매달리지 않고 이러한 사건을 겪게 만든 내 행동의 원인을 찾아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욕심을 부린 것이었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그 옷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돈을 남겨두고 엄마의 돈으로 그 옷을 사고 싶었다. 내 돈으로 그 옷을 샀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어도 될 것을, 어떻게든 엄마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더 보고 싶다는 내 욕심이 만들어낸 비참함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남의 돈을 탐내지 않는다. 남의 돈을 탐내다가는 비참한 일을 당하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