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에 매달리면 결국 더 초라해진다.

<드디어 서울대에 들어갔다>

by 나은진

어렸을 때부터 뚱뚱했다. 뚱뚱한 것이 싫었지만 뚱뚱하지 않게 살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몸은 더더 뚱뚱해져 갔다. 몸에 맞는 옷을 찾기 힘들었고 혼자 옷을 사러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얘한테 맞는 옷이 있는지 네가 들어가서 물어봐.”

“내가 왜? 네가 해!”


지하상가에 있는 옷가게 앞에서 언니들은 늘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88 사이즈 옷조차도 입을 수 없었던 나에게 옷을 사주라는 엄마의 명령을 거절하지 못해, 그녀들은 옷가게 앞에서 나를 두고 서슴없이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다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고 식은땀이 났지만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그녀들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뚱뚱함이 그녀들에게 준 불편 때문에 겪어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얘한테 맞는 옷이 있나요?” 문을 열며 그녀가 물었다.

점원은 내 사이즈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나를 한참 쳐다보았고 쳐다보는 내내 나는 발가벗겨진 것 같아 죽고 싶었다.

“없을 것 같은데…. 잠시만요…. 없어요”

이 정도의 대답은 좀 괜찮은 편이었지만 단번에 ‘없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내 모습이 혐오스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이런 경험은 가장 예민했던 학창 시절 내내 계속되었고, 거울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피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삶자체가 이래서였을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유달리 예민했다. 조금이라도 내 몸매를 쳐다보는 것 같으면 식은땀이 났고, ‘쌀’을 ‘살’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그에게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반응으로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지 않고 무례한 행동을 당하지 않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밥을 적게 먹는 척했고 뚱뚱한 배를 최대한 가리기 위해 애썼고 놀리는 말에도 괜찮은 척했다. 더군다나 내가 제일 잘했던 공부는 절대로 놓을 수 없는 동아줄이었고 최상위권이 되기 위해 안달복달했다. 그래야 그들은 나를 덜 무시할 테니까.


무시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우월해지고 싶은 생각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도 낭만은 나에게 사치였다. 우월해지기 위해 더 이상 무시받지 않기 위해 살 빼기에 더 매달리고 서울대에 진학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학과 1등에게만 주어지는 전액장학금은 늘 내 차지였고 다이어트 때문에 한 휴학기간을 메우기 위해 7학기 조기졸업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서울대 대학원에 한 번에 합격을 했고 한 번에 합격한 사람은 합격자 중에서 나 하나밖에 없었다.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고 이런 나를 남들이 우러러볼 것 같았다. 결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동아리 모임에 참석해, 관심받기를 원했던 의대생 선배에게 한껏 들떠 말했다.


“선배, 나 서울대 대학원에 단번에 합격했어요.”

“그랬구나.”


선배는 나를 추켜세워주기는커녕 이 정도의 일을 왜 굳이 여기서 자랑하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당시의 나에게는 의대라는 포장지보다는 서울대라는 포장지가 더 대단했다. 그래서 선배의 관심이 나라는 대단한 사람에게 쏠릴 것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자랑을 안 하니만 못했다. 나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선배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초라함이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당황스럽지만, 이때 겪은 초라함으로 난 보이는 것에 덜 집착하게 되었다. 섣불리 초라해지기는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