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첫사랑, 하지만 버려야 했다.

<불안의 소용돌이 속 마음의 소리>

by 나은진

6개월 만에 40킬로그램을 빼고서 매달리는 첫사랑을 차버리는 것이 내가 의도했던 복수였다. 하지만 25킬로그램밖에는 빼지 못했다. 계획했던 실행일은 다가오고 첫사랑에 대한 복수를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우리 헤어지자 “

내 말에 그는 약간 놀라는 듯했지만 내 말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오늘까지만 사귀자.” 내가 말했다.

그는 내 제안에 무덤덤하게 응했다.

나에게 매달리지 않는 그를 보며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그때, 그가 나를 붙잡았다.

“한 번만 안아보자.”

그는 간절해 보였다. 나는 그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늦은 밤 택시에 올라탔다.

이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나의 외모를 모욕한 대가를 이별로 징벌했다.


택시에 올라타 기사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기사님, 제 외모는 몇 학점짜리일까요? “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그는 백미러로 나를 흘깃 보더니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A마이너스?”

“제가 좀 전에 3년 사귄 첫사랑 의대생을 차버렸거든요. 제가 의대생을 찰만한 외모인지 궁금했어요.”


낯선 사람에게 나의 외모를 평가받고 싶었다. 다행히기사님은 내 또래의 남자였고, 진실함이 느껴지는 그의 대답을 신뢰했다. 택시를 탄 내내 속으로 A학점을 중얼거렸다. 15킬로그램을 덜 빼 여전히 뚱뚱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A학점은 나에게 그 어떤 상보다 격한 행복감을 주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불안했다. 의대생인 그를 놓아버린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였던 것은 아닐까? 순수한 남자인 데다가 미래가 보장된 의대생, 내 미래를 보장해 주고 내 인생의 자부심이었던 남자가 바로 그였다. 그를 버리고 별 볼일 없어진 지금의 내 삶이 불안했고, 인생의 큰 행운을 놓쳤다는 자책이 내 미래를 공포스럽게 했다. 의대생인 그가 내 옆에만 다시 있어준다면 이 격한 불안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6개월 후 그는 친구를 통해 나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나에게도 그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를 다시 사귈 수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귀어서는 안 된다고 내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당장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을 해서는 안 돼.

그 선택들 덕분에 지금은 좀 덜 불안한 것 같지만

그 선택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미래는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모습으로 찾아오게 될 거야.


그랬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사랑이었다. 첫사랑 그의 옆에 있으면 마음이 허전했다. 나만 바라보던 그였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점점 바빠지는 그의 일상에 나만 바라보는 사랑을 요구할 수도 요구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는 바쁜 그를 내가 챙겨야 했고, 바쁜 그의 시간에 내가 맞추어야 했다. 그를 선택하면 안정감과 눈에 보이는 자부심은 생기겠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주는 외로움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 뻔했다. 이미 외로움 덩어리였던 내가 그와 생기는 외로움까지 감당하며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안정감 대신 내 마음의 행복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