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고통의 크기>
대학교 1학년 동갑내기 의대생이었던 그와 사귀기 시작했다. 예과시절 2년 동안 학교에서 CC로 늘 붙어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눈에는 날씬한 여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있으면 그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나에게 전달했다.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그가 나를 떠나갈까 두려웠고, 그래서 살 빼기에 더 집착했다. 하지만 살은 맘처럼 잘 빼지지 않았다. 15kg을 빼도 20kg이 다시 쪄버리고, 20kg을 빼도 25kg이 불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내가 이렇게 절박하게 살고 있을 때 그는 의예과에서 본과로 가야 했고, 우리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또 그가 바빠지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본과생이었던 그는 1박 2일 단체소개팅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상대는 누구야?‘
“전문대 학생이래. “ 그의 대답에 나는 안심했다.
그의 소개팅 대상인 그녀들의 외모가 나보다 더 잘 꾸미고 더 날씬할 것은 예상했지만, 나보다 한참 공부를 못했던 여자들에 불과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소개팅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우리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어땠어?”내가 물었다.
“음… 너랑 얼굴은 똑같이 생겼는데 너보다 날씬한 그녀가 마음에 들었어.” 이어 그는 한마디를 더 붙였다.
“너도 그녀만큼 날씬했으면 좋겠다.”
공부를 너무도 못했던 그녀와 나를 비교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그래서 복수를 결심했다.
내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자주 찾아갔다. 최선을 다해 웃었고, 최선을 다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계획한 복수를 하기 위해선 그의 마음이 더 나에게 쏠려야 했다. 누가 먼저 찾아가는지, 누가 더 관심을 기울이는지 따위의 자존심 세우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그를 찾아가고, 내가 먼저 그를 챙겨주고 내가 먼저 그를 행복하게 해 줬다. 어떻게 해서든 나의 복수 이전에 그의 입에서 이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동시에 나는 휴학을 했다. 가벼운 신발을 사서 신고는 집에서 학교까지 무작정 8시간을 걸었다. 가방에는 물과 뻥튀기가 들어있었고 걷다 배가 고플 때마다 물과 뻥튀기를 먹는 것으로 허기를 달랬다. 한 달 동안 이 고통스러운 생활을 유지했다. 걷는 것은 참을 만했지만 끓어오르는 식욕을 참아가며 물과 뻥튀기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 더 힘들었다. 어느새 살은 15kg이 빠져나가 있었다. 하지만 정체기가 왔다. 아무리 걸어도 더 이상 살은 빠지지 않았다. 더 독하게 한 달을 걷고 뻥튀기만 먹으며 20kg 이상을 빼긴 했지만, 여전히 뚱뚱했다. 그가 원했던 그녀만큼 날씬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일반식을 먹기 시작하면 90kg의 원래 몸무게로 금세 돌아간다는 사실을… 독하게 참는 것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더 견뎠다. 더 참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언니가 말했다.
“3000배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데.”
하루에 300배씩 일주일을 훈련하고, 엄마를 데리고 백련암으로 갔다.
24시간 이내에 3000배를 해야 했다. 절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계산을 했다.
‘108를 30번 해야 3000배를 할 수 있지. 108배를 하는데 10분이 걸리니까 총 300분, 즉 6시간만 꼬박 절을 하면 돼.‘
계산 상으로는 해볼 만한 일이었다.
밤 8시부터 절을 시작했다. 같이 절을 해주겠다던 엄마는 108배를 한 번 한 이후로 관절에 무리가 간다며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했다. 계산상으로는 9시에 600배, 10시에 1200배, 11시에 1800배, 12시에 2400배, 새벽 1시에 3000배, 나의 고통은 새벽 1시에 끝이 나야 했다.
천 배를 넘어서면서 내 다리는 심하게 후들거렸다. 일어나다 넘어지기를 수 차례. 결국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내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나 봐.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좌절스러웠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다리는 나보다 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 뒤에 있는 후광이 불상과 겹쳐지며 그야말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밝음 그 자체였다. 그녀는 나에게 엿 한 조각을 건네며 웃어주었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작은 봇짐을 메고 산길을 걷고 있었던 소아마비의 왜소한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내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 앞에서 부끄러웠다. 그리고 소아마비로 일그러진 얼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경이로웠다. 순간, 내 입에서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다시 일어서서 절을 했다. 나도 그녀만큼 아름다워지고 싶었고, 내 고통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결국 3000배를 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받아들이는 고통의 크기가 클수록 삶을 놓고 싶어지는 마음이 커지고, 포장지에만 신경을 쓰면 쓸수록 알맹이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에게 묻는다.
‘너는. 아름답게. 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