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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Sep 02. 2019

그렇게 육아 안 해도 괜찮다는 말

미숙하고 서툰 처음에 대한 자기 고백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책이 나오기 전에 원고를 최종 검토하면서 자주 피식거렸다. 엄마가 되며 겪은 시련과 갈등에 대해 쓴 글인데, 엉뚱하게도 6년 전 애인과 함께 런던을 여행하던 27살의 내가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유럽 대륙에 가보는 만큼 최대한 많이 보고 배워 돌아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런던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은 물론이고 빅벤과 타워 브리지 같은 역사적 장소까지 전부 관람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고작 8박 10일 일정을 위해 런던 여행책 5권을 정독하고, 100곳이 넘는 숙소를 비교했으며, 여행지 주변의 식당 리스트를 작성해 전화번호까지 적어뒀다. 현지 안내판의 해설을 독해하지 못할까 봐 유명 관광지의 배경지식을 영어로 익혀두기도 했다.     


떠나기 10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끝에 드디어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였는데 한낮처럼 밝았다. 10시간을 거슬러 날아온 터라 졸음이 몰려왔지만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첫 일정으로 정해둔 빅벤부터 찾아갔다. 


그곳에서 내가 마주한 건 7월 여름의 맑은 날씨도, 유구한 역사의 장엄함도 아니었다. 원숭이 흉내를 내며 동양인인 우리를 조롱하는 백인들이었다. 런던을 향한 낭만은 소매치기처럼 기습한 시차 부적응과 인종차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래도 계획대로 해내야 한다는 욕심에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빨간 공중전화 부스 바닥에 누가 싸질러놓은 똥의 악취만큼은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애인을 붙잡고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심기일전하며 다시 여행을 시작했지만 촘촘하게 짜 온 일정은 실패와 실망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반복되는 좌절에 지쳐갔다. 수개월 간 수백만 원을 쓰며 계획해온 것들이, 반드시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첫 유럽 여행이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마음까지도, 사막 모래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안 해도 괜찮다는 말     


그때 겪은 처참한 좌절의 과정을 스물아홉 살의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되면서 또다시 반복해야만 했다(런던에 같이 갔던 애인은 나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짐을 잔뜩 넣어 빵빵해진 여행 캐리어처럼 빈틈없이 출산과 육아에 대비했지만,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서 전부 무용해졌다.      


자연분만을 위해 걷기 운동을 했는데 역아여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고, 수유용품을 잔뜩 샀는데 젖이 안 나왔다. 유기농 순면으로 만든 이불 세트는 아기가 누워서 잠들지 않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모든 처음은 빵빵한 캐리어가 터져버리듯 과욕과 오만을 한번 털고 가는 단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마더티브 지음, 푸른향기)


책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는 그런 미숙하고 서툰 처음에 대한 엄마 네 명의 자기 고백이다. 또한 가장 고독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동료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격려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아니었다. 가야 할 곳을 빽빽하게 제시한 여행책이 나의 런던 여행에 짐이 됐듯,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한 육아책은 엄마의 자책과 불안을 부추길 뿐이었다. 


우리가 ‘마더티브(Mothertive)’라는 온라인 매거진을 만든 건 2018년 여름이었다. 수많은 강요와 겁주기에 시달린 엄마들을 돌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홍현진과 최인성과 봉주영, 그리고 나는 숱한 시행착오를 복기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여름의 끝자락에 그동안 모은 글들과 몇 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에는 반드시 이걸 해야 한다는 조언 같은 건 없다. 대신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굳이 무통주사를 거부하며 진통을 참지 않아도 되고, 명품 유모차가 없어도 아이는 잘 크며, 수면교육을 안 해도 언젠가는 스스로 잠든다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깨달은 것들을 솔직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된다고 해서 ‘나’라는 주어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와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아이와 함께 커가는 과정,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육아의 의미였다.     


마더티브를 막 시작했을 때 친구가 임신을 했다. 이 책이 나온 지금 그 친구는 세상에 나온 지 백일도 안 된 아이를 키우며 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친구는 자기 때문에 아이가 잘못될까 봐 하루하루 무섭고 불안하다고, 얼른 훌쩍 컸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시간이 지나면 친구도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자라도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견뎌낼 수 있게 된다. 여행할수록 늘어나는 발바닥의 굳은살처럼, 엄마의 마음도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니까.      


무엇을 지킬 것인가     


2016년 마더티브
2019년 마더티브


처음 가본 런던에서 한바탕 좌절을 겪은 나는 여행 5일 차 즈음부터 마음을 비우고 용기를 내 다시 거리로 나섰다. 배낭여행자가 필요 없는 짐을 하나둘 덜어내듯 최대한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놨다. 가야 할 곳을 적어둔 일정표를 버리고, 가고 싶은 곳을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에는 타워 브리지에 서서 밤 9시의 노을을 보고, 템스강의 야경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런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여행을 떠날 때 가야 할 곳보다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됐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서른세 살의 나는 여전히 선택의 순간과 마주 선다. 디럭스 유모차를 살까 말까 하던 고민은 목적어만 바뀐 채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유모차에서 이유식으로, 이유식에서 어린이집으로, 어린이집에서 영어유치원으로. 요즘에는 학습지를 시킬까 말까 하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학습지가 고민의 본질이 아님을 안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무엇을 지킬 것인가. 걸음을 멈추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더는 조바심 내거나 자책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저 이 책을 안내서 삼아 나와 아이의 여정을 만끽할 작정이다. 기차의 창밖 풍경처럼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순간들을 더는 놓치고 싶지 않다. 엄마가 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구매하러 가기:)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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