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살롱 프로젝트] 캔맥 무비톡 <줄리&줄리아>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홍, 홍현진입니다.
마더티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 ‘창고살롱’이 드디어 첫 모임을 열었어요.
창고살롱 소개를 잠깐 하자면요. 마티를 쭉 지켜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티는 ‘엄마의 일’, ‘엄마들의 연대’라는 주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콘텐츠를 발행해왔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나만의 커리어를 쌓으며 지속가능한 현역으로 나이 들 수 있을까.’ 마티를 운영하는 저와 에디터 인성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거든요.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놓지 않았던 이유기도 하고요.
그러던 차에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여성과 일'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혜영님을 만나게 됐어요. 두 아이 육아로 5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한 혜영님은 루트임팩트와 함께 경력보유여성 대상 강연, 교육을 하고 있고요. 20대 대학생들과 여성 리더들을 인터뷰한 책을 만들고 있어요.
혜영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의 일’을 주제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육아 이야기 나눌 커뮤니티는 많지만 엄마의 일을 함께 고민할 커뮤니티는 없잖아요. 생각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 우리 안에 있는 걸 일단 다 꺼내보자면서 창고살롱을 결성하게 됐어요(그때 회의하던 곳이 성수동 대림창고인 건 안 비밀)
처음에는 오프라인 북클럽을 구상하고 커리큘럼까지 다 짰는데 예상 못한 시련이… 바로 코.로.나. 안 그래도 시공간의 제약이 많은 엄마들인데 완전히 집에 갇혀 버린 거죠(거기다 아이까지 함께). 창고살롱 멤버들도 모두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 커뮤니티는 물 건너 간 건가 잠깐 좌절했다가 가볍게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후다닥 100% 온라인 모임을 기획했어요. 이럴 때일수록 이야기가 필요하니까요.
첫 모임 주제는 영화 <줄리&줄리아>.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아담스가 나오는 아주 사랑스러운 영화랍니다. 영화 포스터만 보고 흔한 요리 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 시대를 초월한 여성과 여성의 연대에 대해, 기혼 여성의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예요. 아 물론 눈을 즐겁게 하는 프랑스 요리도 마음껏 볼 수 있고요.
미스터트롯 결승전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목요일 밤 10시, 8명의 여자가 노트북 앞에 모였어요. 캔맥 무비톡이었지만 코로나 재택 감금에 지쳐 캔맥 챙길 정신도 없던 분들이 더 많았던 걸로.
중간에 아이들 난입하고 자다 깬 아이 때문에 소환되고 마이크 안 들리고 우여곡절 많았지만 무려 2시간이나 찐한 토크를 나눴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타임코드를 미리 준비해와서 함께 봤어요. 영상 보면서 이야기하니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민지님 Pick) 줄리가 남편과 싸우는 장면
“줄리와 줄리아 둘 다 남편들이 너무 나이스해요. 든든한 지원군으로 이상적으로 표현돼있는데 현실감 있는 장면이었어요. 줄리가 블로그를 열심히 쓰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은 힘들게 하잖아요. 일에 열중하다 잘 안 되면 가족들에게 풀 때가 있는데 나도 일할 때 그랬지, 공감갔어요.”
석지영님 Pick) 줄리와 줄리아가 남편에게 “당신은 내 버터이자 숨이야”라고 말하는 장면
“남편과 저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지영님 Pick) “정부 일은 싫고, 뭔가 새로운 일을 찾고 싶다”는 줄리아
“저도 싫은 건 명확한데, 그래서 뭘 하고 싶은지는 흐릿흐릿 하더라고요. 이제 싫은 건 정리가 됐고, 이제부터는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가고 싶어요.”
혜미님 Pick) 줄리아가 책 계약하는 순간
“줄리아는 포기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을 끌고 가요. 하기 싫은 것을 쳐내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발휘하는 힘을 볼 수 있었어요.”
주연님 Pick) 줄리아의 남편이 줄리아에게 하는 말. “당신 책은 훌륭하니까. 당신 책은 천재적이고. 당신 책은 세상을 바꾸게 될 거라고.”
“줄리아는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안정을 받아요. 진정한 서포터 한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누군가를 저렇게 진심으로 믿어주는 이야기를 해본 적 있나 돌아보게 됐어요.”
혜영님 Pick) 주연님과 같은 장면
"저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줘야겠다 생각했어요."
인성님 Pick) 줄리아와 심카가 처음 만나는 장면
“줄리와 줄리아가 긴 시간 끝에 책을 낼 수 있었던 데는 동시대 여성들과의 연대도 도움이 됐어요. 줄리아와 연구하고 책을 쓴 심카, 출판사를 연결해 준 펜팔 친구 에이비스. 우연한 만남이 열정적인 협력과 지지가 되는 과정이 신기했고 냉정하게 협업하는 방법(?)도 재밌었어요. 줄리도 무한 지지를 해준 친구가 곁에 있었죠.”
현진 Pick) 줄리아의 코멘트에 좌절한 줄리에게 남편이 힘을 주는 장면
“창고살롱 기획하면서 인성님, 혜영님과 롤모델이 아닌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완벽하고 절대적인 롤모델이 아니라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는 레퍼런스 말이에요. 줄리아가 줄리에게 영향을 준 건 사실이지만 결국 줄리를 살린 건 줄리 자신이라는 남편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두 여성의 남편들도 훌륭하지만 줄리&줄리아에는 여성이 여성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자주 등장해요.
1950년대, 남성들로 가득한 요리계에서 고군분투했던 줄리아의 여정은 2000년대, 줄리가 요리와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데 힘을 주죠.
줄리, 줄리아와 동시대에 산 여성들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고요.
두 번째 섹션에서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연대의 경험을 이야기 했는데요. 참가자들에게는 ‘연대’라는 말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뭔가 굉장히 강력하고 끈끈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같기도 하고요.
사실 창고살롱이 생각하는 연대는 거창한 게 아니거든요. 어쩌면 연대보다는 ‘느슨한 연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어요. 밀어주고 끌어주는 끈끈한 연대보다는 훨씬 느슨하고 미약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영향을 미치는 연결.
5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줄리아가 줄리에게 그랬듯이 말이에요. 마더티브와 혜영님 그리고 참가자들이 줄리&줄리아를 통해 서로서로 연결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혜미님은 본인의 ‘연결’ 경험을 들려줬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는 관심사가 있을 때 섣불리 하겠다고 나서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제 생활이 예측 불가능하니까 쉽게 같이 하고 싶다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누군가 편하게 먼저 ‘같이 해볼래?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해보자’ 제안을 해줬을 때 안정감이 들더라고요.”
기혼 여성인 줄리와 줄리아가 일을 할 때 남편이라는 존재가 꽤 큰 영향을 미쳐요. 줄리아 같은 경우에는 외교관 남편 때문에 집도 없이 이곳저곳을 계속 옮겨 다녀야 하죠.
여기에 아이까지 태어난다면? 더는 내 일만 생각하기 어려워지죠. 당장 코로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요. 참가자들에게 물었어요. 기혼 유자녀 여성에게 일이란 뭘까요.
“평균감이 있어야 하는 일 같아요. 오로지 저를 두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제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면서 육아와 균형을 잡아야 하는 평균감.”-박지영님
“일에서 얻고 싶은 수많은 욕심을 줄여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혜미님
“기혼 여성에게 일이 필수는 아닌데 지금은 꼭 필수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 것 같아요. 내게 있어 기혼여성에게 일이란? 선택인 듯 필수인 듯.” -민지님
처음 만난 사람들과 그것도 온라인으로 진솔한 대화가 가능할까 했는데 왠걸요.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어서 좋았어요. 2시간의 랜선 모임을 마치며 참가자들에게 소감을 물었어요.
“다 제가 뽑은 장면을 가져오실 거라 생각했는데 다 다른 장면을 뽑았고 이유도 다 달라서 놀랐어요. 기혼여성의 일이라든지 여성연대라든지 평소에 시간 들여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를 다른 분들 이야기 들으면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주연님
“코로나 사태로 집콕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설렜어요.”-석지영님
1. 메릴 스트립의 제인 폰다 트리뷰트
느슨하지만 강력한 연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스피치예요. 제인 폰다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에게 작품상을 시상했던 배우기도 해요.
2. 스필버그는 왜, 이 영화를 ‘그녀’에게 헌정했을까
참가자 중 민지님이 소개해주신 칼럼이에요. <줄리&줄리아> 감독 노라 애프론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연출한 여성 감독이기도 한데요. 2012년 작고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했고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더포스트>도 추천해요.
어려운 상황 속에도 꿈을 쫓아 노력하는 줄리아의 속시원한 성공의 순간들도 좋았지만, 줄리아의 레시피를 따라 음식을 만들고 기록하며 좋아하는 일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줄리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제일 좋았던 건 줄리아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쌓아간 성공의 길이 50년 뒤 줄리에게 닿아 또다른 길이 만들어지는 걸 발견할 때였다. 버터로 연결된 느슨한 연대감이랄까.
창고살롱에서 추천해준 메릴 스트립의 제인폰다 트리뷰트 스피치. 첫 영화여서 긴장한 메릴을 센스있게 도와준 제인과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제인의 존재에 감사하며 다른 후배에게도 그렇게 하리라 말하는 장면, 제인의 친절함을 후배들에게도 연결하겠다는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앞선 선배들의 궤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 이제 나도 후배들에게 레퍼런스가 되고 있을 것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지니고, 내가 받은 좋은 영향을 촘촘히 기억해가며 최선을 다해 내 길을 열심히 가면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창고살롱 두 번째 모임은 북토크로 진행하려고 해요. 이다혜 작가가 쓴 <출근길의 주문>인데요. 조만간 모집 공지 올릴게요. 그럼 다들 무사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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