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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Mar 18. 2020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창고살롱 프로젝트] <줄리&줄리아>를 보며 생각한 것들


줄리 & 줄리아를 보며 나에게 와 닿았던 키워드 4개 :  #데드라인 #읽어주는 사람 #여성의연대 #기혼유자녀여성의일
 


1. 데드라인



영화 초반, 7~8년을 작가가 되기 위해 집필 활동을 하다가 결국 공무원이 되어버린 줄리가 남편에게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줄리: “나에게 데드라인이 필요할 거야. 데드라인이 없으면 다른 것처럼 중간에 포기하게 될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끝낸 게 없어. 왜 그런지 알아? 내가 ADHD(주의력 결핍장애)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집안일도 엉망이지.”


데드라인의 필요성을 말하는 줄리에게서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줄리의 투덜거림을 듣고는 나 또한 뭐든 끝까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끝장나게 놀아본 적도 없고 하다 못해 중학교 때 밤새워했던 게임들의 엔딩 한번 본 적 없고 매사에 소심하진 않았지만 또한 미친 듯이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호기심은 많았지만 눈에 띄게 잘하는 건 없었고 또 스스로 미친 듯이 몰두하는 법이 없었다.


늘 애매모호한 태도였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집중력이 높아졌던 것은 항상 데드라인을 앞두고였다. 초중고 시험 전날 가장 열심히 공부했으며 이력서 마감 전날 가장 힘을 써서 나를 피력하려고 했다.


결혼 직전이 돼서야 신랑과의 결혼과 내 인생에 대해서 고심을 했으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야 아이의 교육과 내가 부모로서 갖춰야 할 인성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대부분 데드라인 직전에만 닥친 과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를 잘 알기도 하지만 또 잘 모르기도 해서, 막연하게 이제껏 데드라인 전에 최선을 다했던 기억만으로 나에게 데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줄리도 그랬던 것일까? 생각에 슬며시 실소가 나왔다.


이 순간은 이미 수없이 있었고 또한 앞으로도 수없이 있을 것이다.


라는 다소 생뚱맞은 맥락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떠오른다. 물론 이 사상 자체가 자연 과학적 사실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게 닥친 데드라인이 수없이 있었고 또 앞으로 수없이 있을 거라면... 만약 진정 그렇다면 나는 이 데드라인 뒤에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행복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설사 중간에 데드라인을 넘긴다고 쳐도 민망한 웃음 한 번 짓고 나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2. 읽어주는 사람 



<줄리&줄리아>에서 나오는 줄리와 줄리아의 남편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부모상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잘 들어주면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한다. 부부와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필요한 적절한 피드백의 이상적인 모습이랄까?


영화 20분 42초.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살기 시작한 줄리아가 말한다.


줄리아 : 내가 공무원은 잘 안 맞잖아요.


남편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선입견도 없고 다만 줄리아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는 차분한 시선이다.

줄리아 : 대사관에서 모자 뜨기 수업이나 들어볼까 해요.


남편은 자신 앞에 있던 접시에 담긴 음식을 스푼으로 잘게 자르며 그녀의 말을 곱씹듯이 말한다.


“모자 뜨기 수업?”


줄리아에게 남편이 묻는다.


“줄리아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줄리아는 답한다.


“먹는 것.”


모자 뜨기 수업을 들으려고 할 때, 그래서 진짜 니가 원하는 게 뭐야 라고 물어봐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과연 있는가?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가?




3. 기혼 (유자녀) 여성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날씨가 하나도 춥지 않았고 외투 주머니에 있던 에어팟을 귀에 꽂고 집에 가고 있었다.


에어팟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이었을까? 혹은 하나도 춥지 않은 날씨 때문이었을까? 노래에 이끌려 날씨에 이끌려 집 쪽이 아닌 집 앞 수변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집으로 이사 와서 4년 동안 한 번도 자발적으로 산책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분이 너무 묘하고 한편으로 너무 홀가분했다. 코로나 19라는 단어만 없다면 내가 그동안 그토록 원하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예준이를 등원시키고 풀과 물이 보이는 곳을 산책하고 상념에 잠길 수 있는 시간.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이 순간을 계속 누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순간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오래전에 이런 시간들을 만끽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었지만 당시 나는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한없이 무거운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었다.


단지 기혼 여성의 일 이전에 나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재정의가 필요한 시기다.




4. 여성의 연대



연대의 사전적 의미:

 
1. 함께 일을 도모하며 책임을 지는 것
2.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음


연대란 무엇일까? 2번의 의미라면 너무 무겁다. 비슷한 경험, 감정을 느낄 때 자동적으로 연대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예) 혹은 나와 성격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공공의 적을 뒷담화하며 갑자기 그녀/그가 친밀하게 느껴질 때


결국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느낄 때 타인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거라면 연대감을 누릴 수 있는 그룹을 잘 찾아가기 위해 나의 경험과 느낌을 잘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의 연대의 개념이 너무나도 빈약한 것 같아 예전에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해두었던 것을 찾아 기록해본다.


동화가 아이들의 이야기인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 쓰인 것이라서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인생의 초반기, 다른 사람들은 내게 힘을 행사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그 시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에서 '힘'자체가 살아남기에 적합한 수단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는 힘없는 이들이 연합하여 성공을 이룰 때가 많은데, 이는 종종 서로에 대한 친절한 행위에서 비롯된다. 망가뜨리지 않은 벌집, 죽이지 않고 풀어 준 새, 존경의 마음으로 맞아 준 노파 같은 존재들이 그 행위를 되갚아 준다. 미약한 존재에게 씨앗을 뿌렸던  친절이, 동화에서 그리고 가끔은 현실에서도 위기의 순간에 결실은 맺는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by. 박지영 : 지금은 다만 나답게 사는 법을 찾고 있는 여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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