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 권우정 감독
10년 전 우정언니와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땅의 여자>를 만들었다. 언니는 감독이었고 난 조연출이었다. 자발적으로 귀농한 여성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평범한 삶의 방향은 아니지만 건강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다.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개봉도 했다.
우정언니와 나는 10살 차이인데,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당시 10년 후엔 나도 언니처럼 살 거라 굳게 믿었다. <땅의 여자> 개봉이 마무리되던 때, 언니는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롤 모델로서 언니의 더 활발한 작품 활동을 기대했던 터라 나만의 아쉬움이 있었다. 몇 년 후 나도 결혼을 했고, 두 아이 육아와 직장 생활에 허덕이느라 자연스레 언니와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최근 언니의 차기작 <까치발>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8년 만이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꿈을 아직도 품고 있지만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나였다. 꼭 봐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영화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우정언니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씩씩하고 확신에 찬 듯한 모습이 위안이 됐다. 상영 후 GV까지 마치니 밤 11시가 다 되어 서둘러 귀가하느라 긴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터뷰를 핑계로 우정언니를 다시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은 '불안'에 대한 이야기다. 우정언니의 아이는 미숙아였다. 태어나자마자 장기 입원이 시작됐고, 이후에도 잦은 병치레와 들어보지 못한 병명으로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인지장애를 의심하게 하는 징후 '까치발'도 계속됐다. 언니는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인 것 같았다. 죄책감은 극도의 불안으로 표출됐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가족의 손길도 차단하고 혼자 아이 곁을 지켰다. 그렇게 해야만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옆에 있어도 외로웠던" 그때 누군가 언니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에게 위로가 된 사람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었다. 어쩌면 같은 어려움을 미리 겪었을, 그래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를 건넬 수 있었던 사람들.
뜻밖의 위로를 받으며 엄마들의 연대를 경험한 언니는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로 마음먹었다. 예상치 못한 삶의 변화 앞에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을 엄마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자신이 위로받았던 것처럼. 그런데 카메라 렌즈는 자꾸 자신을 향했다.
"처음부터 자전적 다큐를 찍으려 했던 건 아니고 엄마들의 연대를 담고 싶었어요. 그런데 내 불안에서 시작된 얘기를 이어가려다 보니 내 얘기를 하지 않고는 남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더라고요."
우정언니가 차기작을 내기까지 8년, <까치발>을 기획하고 완성하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왜 이리 긴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했다.
"<까치발>이 나오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게 전부 아이 때문은 아니지만, 시공간의 제약은 분명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적인 제약을 떠나서 실제 제작을 하다 보니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야 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또 아이 성장에 따른 내 감정 변화도 지켜봐야 했고요. <까치발>은 성장 이야기라 시간이 흐르면서 일어나는 변화에 따라 이야기 결이 달라지거든요.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서사가 건강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아이와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엄마'가 되어 마주 앉은 언니와 나. 자유로웠던 10년 전을 추억하다 언니의 결혼식 때는 숨겼던 아쉬움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때 질문 많이 받았어요. <땅의 여자> 개봉하고 끝날 무렵이었는데, 한창 동력이 생겼을 때 왜 결혼을 하느냐고. 근데 전 그게 남성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혼해도 당연히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영상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출산 3개월 후 복귀하려던 계획은 좌절됐다.
"동료 감독 작품에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애도 돌봐야 하고 애 잘 때는 일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힘드니까 애한테 짜증 내고 애는 계속 울고. 이걸 일주일 해보니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울면서 전화했어요. '미안한데 나 못하겠다'라고. 처음으로 내 입으로 먼저 '못 한다'라는 말을 했어요. 내 의지만으로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첫 좌절이었어요. 또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발달과정에서 항상 불안 요소가 있었어요. 백일, 돌 이런 때마다 입원하고 자주 아팠어요. 이 과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처절하게 느꼈고 포기한 것들도 많아요. 아이와 거리를 두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한테는 온전히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때가 있었고 나도 그걸 다 뿌리치고 일만 선택할 수 없었죠."
특히 자기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영화감독으로서 엄마가 된 이후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저는 특히나 독립영화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의지나 철학이 확고했는데 작은 아이 때문에 굴복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내 속도에 맞춰지지 않는 것도 답답했어요. 처음엔 출산 후 달라진 환경에서 나의 위치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결혼 전 내 이상과 계획에 아이와 남편을 같이 끌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엄청나게 치고받고 싸우면서 바닥까지 가기도 했죠. 결국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고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은 아니니까 맞춰가고 있어요."
오랜만에 영화 <까치발>을 내놓고 보니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드는 아쉬움도 있었다.
"2000년부터 일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 건 없었는데, 요즘 아쉬운 점이 생겼어요. <까치발>의 경우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인간이 갖는 불안,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여성 감독의 엄마로서의 삶이나 장애 아이에만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그런 규정은 이야기를 확장하기 어렵게 만들죠. 또 아이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이 생기니까 여성 독립다큐 감독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카메라를 가장 가깝게 들이댈 수 있는 게 나와 가족이니까. 이런 자전적 다큐, 에세이 다큐 등을 사적 다큐라고도 하는데 '사적'이라는 말로 묶으면 사회적인 영향력이 축소되거든요. 영화를 들여다보면 사회적인 의미가 많은데도 불구하고요. 사적 다큐라는 말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언니는 영화 <까치발>이 그저 '엄마'라는 틀에만 갇히지 않길 바라면서도 엄마들은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까치발>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 당시 영화를 보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던 서비스가 없어진 것을 언급하며 "페미니즘이 확장되었지만 엄마가 된 여성들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라고 덧붙였다.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우정언니가 다큐멘터리를 놓지 않는 이유, 계속 일하게 만드는 동력에 대해서도 물었다.
"다큐멘터리 진영의 건강함이 있어요.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 응원하는 힘이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네트워크의 건강함이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요. 진영의 힘과 관객들의 피드백, 독립영화의 건강성만으로 전 만족해요."
이어 그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내 인생의 롤모델들을 만났던 것 같다. 내 삶의 방향성을 담은 것"이라며 자신만의 다큐멘터리 작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소득이 안되는데도 농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농가일기>를 찍으면서는 '독립영화 진영의 사람들이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계속하는가', <땅의 여자>를 찍으면서는 '여성으로서의 여러 역할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병행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다. 영화 <까치발> 또한 불안의 과정을 딛고 먼저 살아간 다양한 엄마들을 만나 불안을 어떻게 풀어갔는지 묻고 방향을 찾았다.
그런데도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당장 수익이 없는 장기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했다. 아이를 돌보고, 수입을 위한 일도 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까지 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따라야 할 길이기도 할 테니까. 돌아온 답은 청천벽력 같았다. 우정언니는 아팠다. 머리가 다 빠져 가발을 썼다고 했다. 너무 놀라 눈물부터 쏟아졌다.
"나같이 안 했으면 좋겠어요. 복귀는 내 의지, 내 욕심이니까 시간을 쪼개서 쓸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잠을 줄이라는 얘기밖에 못하더라고요. 아이가 자는 시간까지 혼자 3교대로 일하며 살았어요. 무리하니까 결국엔 병이 난 거죠. 몸도 힘들었지만, 인정욕구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했던 것 같아요. 누구 엄마로서도 중요한 사람이고 독립영화를 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내가 타인에게 인정받는 누구일 때만 스스로를 사랑했던 거예요. 엄마들이 욕심내지 않으면 도태되게 만드는 사회니까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자기 존재도 스스로 많이 사랑해주면 좋겠어요."
우정언니는 내려놓기로 했다. 남이 아닌 자기만의 속도에 맞춰 가야겠다고. 자신이 왜 스토리텔러가 되려고 했었는지 본질적으로 이유를 돌아보기도 했다.
영화 <까치발>은 최근 배급사와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양성을 띠는 영화제가 많아져서 <까치발>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언니의 말은 의외였다.
"영화를 내놨지만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전보다 더 없는 것 같아요. 많아 보이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별로 없어요. 영화제 성격이 다양해졌는데 프리미어 상영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를 다양하게 보여 줄 기회를 잃게 되더라고요. <까치발>은 다행히 최근 배급사를 만나서 다시 편집 중이에요. 올해 개봉이 목표인데, 쉽지는 않겠지만 관객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돌아서는데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저 먼 미래로만 보였던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꿈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는 듯 했다.
이 글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