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 독립잡지 <언니네마당> 편집진 인터뷰
<마더티브>를 막 시작하며 한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다. 우리팀의 소개를 마치자마자 한 참가자가 비슷한 매체가 있다며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연락처도 알려주겠다고. 심쿵. 선의가 진심으로 감사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지만 첫발을 내딘 날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을 줄이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내면을 이야기하는 여성지 <언니네 마당>
무려 2014년부터 발행된 독립잡지였다. 형식은 달랐지만 매체에 담는 메시지가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장이라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당시에는 만나지 못했다.
그 후 <마더티브> 채널을 열고 한참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어쩌다 엄마가 되어 하필이면 육아 집중기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창업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장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니건만, 생업과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네 명의 엄마는 밤을 새워가며 이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돈 한 푼 못 버는데 가슴 뛰는 일, 어느새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일. 이건 분명 기존에 생각하던 일과는 다른 개념의 '일'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의외로 우리 같은 엄마가 곳곳에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리처럼 창업을 시작한 엄마들뿐만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는 엄마들,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 하는 엄마들, 일과 취미의 경계에서 딴짓을 하는 엄마들, 육아 말고 뭐라도 하고 싶은 엄마들…
세상은 회사를 다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엄마를 워킹맘/전업맘 둘로 나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엄마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엄마들, 집에서 애만 보고 싶지도 그렇다고 회사에서 일만 하고 싶지도 않은 엄마들이 많았다. 이들은 워킹맘/전업맘이라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일을 개척하고 있었다.
우리는 '엄마의 일'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하며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새로운 일이라니.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회사와 아이 사이에서 다른 일을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다시 <언니네 마당>. 콘텐츠 제작자로서, 엄마로서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가본 사람들. 마침내 전화기를 들었다.
솔직히 처음 반응은 좋지 않았다. <마더티브>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언니네 마당>이 엄마라는 틀에 갇힐까 우려된다"고 했다. 긴 설득 끝에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을 받긴 했지만 어딘가 개운치 못한 구석이 있었다. 직접 만나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말 발간한 <언니네 마당> 11호 '일은 합니다만'(마침 '일'이 주제였다!) 책모임에 나갔다.
책모임이 끝난 후 조심스럽게 <마더티브>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엄마의 일' 기획 목적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터져나왔다.
우리랑 시작이 완전 똑같아요,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또 한번 심쿵, 가슴이 마구 두근댔다. 찬 바람이 불던 1월 어느 날 충무로의 '지붕 없는 인쇄소'에서 <언니네 마당>의 정주연 편집장, 김순주 아트플래너, 정소현 디자이너를 다시 만났다.
저는 정말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내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 (웃음) 엄마가 된 후 애매한 내가 돼가는 걸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다시 나를 찾고 싶었어요.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을 창간한 정주연 편집장은 '나를 찾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잡지를 만들었다. 김순주 아트플래너와 정소현 디자이너도 고민이 같았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던 그들은 '나를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뭉쳐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4년 9월에 창간한 <언니네 마당>. 당시는 최근처럼 독립잡지가 활발하게 나오던 때가 아니었다. 접근성이라면 온라인이 더 나을 텐데 왜 오프라인 독립잡지를 선택했을까.
정 편집장은 "대체 뭘 해서 나를 찾을까, 어떻게 나 자신을 표현할까 고민하던 순간 패션·육아·리빙이 아닌 철학·심리 등 카테고리가 다양하게 나뉜 외국의 각양각색 잡지들이 눈에 띄었다"며 "잡지를 만들어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업 잡지는 빠른 트렌드에 발맞춰야 하고 인터넷은 휘발되는 느낌이었다"며 "독자들이 잡지를 소장하면서 '나 다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한 정 편집장. 하지만 정작 책을 만들어본 경험은 없었다. 주변을 수소문해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정소현 디자이너는 지인 소개로 만났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꼭 맞아떨어진다는 걸 깨닫고 손을 잡았다.
김순주 아트플래너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언니네 마당> 애독자였던 그는 독자모임에 나갔다가 마음이 맞아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다. 이 3명 외에 에디터가 몇 번 바뀌긴 했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4명의 여성이 <언니네 마당>을 만들고 있다.
<언니네 마당>은 총 11권의 잡지를 만들었다. 한 호당 500~1000부를 인쇄했다. 처음 인쇄 비용은 '텀블벅'을 통해 마련했다. 텀블벅은 크라우드 펀딩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인 동시에 <언니네 마당>을 홍보할 수 있는 통로였다. 오프라인 플리마켓에 나가서 직접 책과 굿즈를 판매하기도 했다. 잡지를 한 권 두 권 만들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수입원이 생겼다. 단행본을 제작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 현재는 잡지 판매와 외주 작업 비용으로 제작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언니네 마당>은 독자들이 함께 만드는 잡지다. 잡지를 만들 때마다 독자들과 오픈 기획회의를 열고 글, 그림, 사진 등 원고를 모집한다. 블로그 등 SNS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청탁을 하기도 한다. 참여 독자는 유명인이나 창작활동을 주된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닌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다. 정 디자이너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들을 잡지에 싣는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나', '처음', '결혼', '어른 찾아 삼만리' 등의 주제로 잡지를 펴냈다.
정 편집장은 "'나'를 찾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자아실현도 같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잡지를 만들면서 참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참여가 잡지를 만드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정 디자이너도 "환기와 연대가 <언니네 마당>의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독자 참여를 통해 4명이 하지 못했던 새롭고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고 그 아이디어들이 모여 <언니네 마당>이 나아갈 힘이 된다.
정 편집장은 이제야 인쇄비 정도가 남는 사정 때문에 참여 독자들에게 물질적으로 충분히 보답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언니네 마당>에 참여해주시는 분들께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시는 데 저희를 발판으로 삼는 계기를 드리겠다고 한다. 다행히 오히려 좋아해주신다"고 말했다. 언니네 마당에 창작물을 싣는 것을 계기로 공모에 당선되거나 전시회를 열고 책을 내는 독자들을 보며 편집진은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김 아트플래너는 "혼자는 못하지만 누가 엉덩이 한번 쳐주면 용기를 얻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언니네 마당>이 서로 용기를 주면서 손잡고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언니네 마당>은 여성지이지만 여성들의 이야기만 실리는 것은 아니다. 남성 인터뷰나 에세이도 있다. 정 편집장은 "<언니네 마당>을 처음 보면 '페미니즘 잡지냐'고 가장 먼저 묻는다"면서 "저희는 휴머니즘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여자, 남자 나누거나 엄마도 직장맘, 전업맘 이렇게 나누지 않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고 설명했다. 언니네 마당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마당이다.
독립잡지는 기획 단계부터 제작,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다 직접 해야 한다. 시행착오는 없었을까. 일단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하고 싶은 얘기는 넘쳐났다. 일주일에 한번 오프라인 회의를 열고 회의인지 수다인지 모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아이템이 떠올랐다. 전문가인 정 디자이너 덕분에 인쇄 등 제작 과정에서도 아직까지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독립잡지를 취급하는 서점이 많지 않았던 2014년 창간 당시엔 직접 발로 뛰며 책을 팔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온라인 서점 등 판매 활로가 늘어났다.
위기는 있었다. 2년 전, 정 편집장은 가족 사정으로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해외로 떠나게 됐다. 창간 멤버였던 편집장이 한국에 없으니 언니네 마당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닐까, 정 편집장은 마지막을 예감했다. 하지만 다른 세 명의 멤버가 한국에서 묵묵히 잡지를 만들어 나갔다. 대신 독자 참여 비중을 좀 더 늘렸다. 정 편집장은 해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이번 11호는 정 편집장이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처음으로 만든 잡지다.
올해 6년 차가 된 <언니네 마당>.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육아까지 병행하면서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을까? <마더티브>가 가장 궁금해했던 지점이기도 했다. 그 힘에 대해 정 편집장은 "딱 한 가지"라고 말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같기 때문이에요. 그걸 함께 풀어 가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웠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잘 나가서 수익이 엄청나게 나고, 유명세를 치렀다면 오히려 벌써 깨졌을 것 같아요. 외부 요인을 의식하다 보면 우리 안에서 놓치는 게 많을 테니까요.
김 아트플래너도 동의하며 "멤버들이 각자 너무너무 다른 사람들이지만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고 말을 보탰다. 이어 "누구 엄마로서가 아닌 생각과 취향이 맞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기 때문에 오래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람이니까 흔들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며 "그럴 때 옆에서 잡아 주는 사람과 지금까지 쌓인 신뢰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언니네 마당>이지만 독립잡지로서 독자들의 니즈나 수익 모델 등에 대한 고민은 늘 품고 있다. 정 편집장은 "처음 <언니네 마당>은 완전히 '놀이터'의 개념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판매도 걱정해야 하고 사람들한테도 맞춰야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우리 하고 싶은 것만 하다 사람들이 안 봐주면 계속 놀이터에서 놀 수도 없지 않겠냐"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해서 수익을 최우선으로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정 편집장은 "가치지향적으로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니네 마당>이 11호까지 오면서 쌓은 가장 큰 자산은 독자다, 참여해주신 독자분들이 한번 참여하고 떠나는 게 아니라 그분들과 새로운 기획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주연 편집장은 통번역계에서 일을 해왔다. 출산 후, 아이를 안정적으로 돌보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지 못해 회사를 다니다 말다를 반복했다. '엄마'라는 역할에 자신이 없었다는 정 편집장은 출산 후 큰 혼란과 우울을 만나며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소현 디자이너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결혼 후 임신 준비를 하며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놓지 않았고, 아이가 3살이 되던 즈음 일을 늘리려던 차에 정 편집장을 만났다. 그림을 그리던 김 아트플래너도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두 아이 육아로 오랜 시간 창작 활동을 쉬었다. 마음 한편에 '나'를 찾고 싶은 갈증을 묵혀뒀던 그도 <언니네 마당>을 만나며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작업실도 열었다.
정 편집장과 정 디자이너는 초등학생 자녀를 한 명씩, 김 아트플래너는 올해 대학에 간 첫째와 중학생 둘째가 있는 엄마다. 만 5년간 아이들을 돌보면서 끊임없이 잡지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방학인 아이와 함께 인터뷰에 나온 정 디자이너는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정 근처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와 디자인 일을 병행하고 있는 그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끝없이 구멍이 생긴다. 그걸 채우기 위해서 양육자 간의 조율이 계속 필요한데 보통 엄마가 그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편집장은 <언니네 마당>에 광고나 후원을 받기 위한 기업·지자체 미팅, 회의 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엄마만의 시간'을 기다려주기도 했다.
김 아트플래너는 홀로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 남편은 일로 바빴고 친정도 멀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아이들과 재밌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2~3년을 작정하고 즐겼다. 외향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핵인싸' 성향을 살려 엄마 커뮤니티 온오프라인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는 "그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제가 밖으로 다녀도 남편이 할 말이 없다(웃음)"며 "제법 큰 아이들에게도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산다'고 설명하니 자연스럽게 적당한 거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나를 찾는 과정에서 남편도 많이 변했다"며 "남편들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계속 한 번씩 찔러보라"고 조언했다.
남편과 육아를 함께 한다는 정 편집장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는 "남편이 나의 편이 되지 않거나 나의 생각과 태도에 대해 공감하지 않으면서 육아를 같이 하는 건 너무 힘들다"며 "육아는 한 사람이 다 맡을 수 없는 일이며 팀워크"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남편에게 자신이 왜 일을 해야 하는지 계속 설득했다고.
편집진에게 일로서 <언니네 마당>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았다. 김 아트플래너는 "<언니네 마당>을 만들면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공부도 하면서 깨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서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며 "<언니네 마당>은 제 길을 인도해주는 셰르파 그리고 함께 가는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정 디자이너도 "정체성을 찾아가며 길을 잃을 때마다 저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말을 더했다.
<언니네 마당>이라는 일은 육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처음 <언니네 마당>을 시작했던 멤버 중 한 명은 정 편집장의 아이 어린이집 학부모였다. 정 편집장은 "살펴보니 엄마들 중에 능력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아이한테 너무 올인 해서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면 더 스트레스 받고 더 잘 안 됐다"며 "다른 일로 분산을 하니 거리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게 돼 육아도 효율적으로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편집장은 지금까지는 삶에서 육아의 비중이 70%였다면 이제는 아이가 컸기 때문에 <언니네 마당> 비중을 70%까지 올리고 싶다고.
올해는 <언니네 마당>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이제 저는 다시 <언니네 마당>과 함께 합니다. <언니네 마당>이 제 인생에 '일'로서 다시 들어온 것입니다. 한때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적당한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하고 산 적도 있었죠. 그러나 그때 제가 했던 일을 내 인생의 일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 일이 훨씬 더 일다운 일이라고 해도 말이죠...중략...저에게 일이란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활동'이고 그래서 '나를 더 많이 알아가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나와 주위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 <언니네 마당> 11호 '일은 합니다만' 편집장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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