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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30. 2024

여행자의 하루

Ray & Monica's [en route]_137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간혹 한밤중에도 창밖에서 새가 운다.

"저것은 사랑의 소리일까요 포식자를 경계하는 소리일까요?"

아내의 궁금증을 아직 풀지 못했다.

아침은 온갖 새들의 진귀한 지저귐으로 눈을 떤다.

"우리는 일찍 일어나기가 귀찮은데 새들은 어찌 동이 트면 벌떡 일어날까요?"

아내의 이 물음에 답할 적당한 상식이 생각났다.

"유전적 가르침 때문이 아닐까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문을 열면 정원의 금호선인장golden barrel cactus이 아침햇살을 받아 이미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20여 년을 기다려 딱 3일간 해가 있는 시간에만 꽃을 피웠던 이 선인장은 닫은 꽃잎 아래에서 씨앗을 만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선인장 정원의 크고 작은 여섯 그루 금호선인장은 모두 남쪽으로 10도쯤 기울어져있다. 사막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방향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사막에서조차도 빛을 좋아하는 이 선인장은 태양을 향해 자라는 경향 때문에 젖꽃판이 자연스럽게 조금 남쪽으로 향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 성장 패턴을 알아내고 해가 없는 조난 상황에서도 방향을 알아내는데 활용했다.

아내는 이 정원에서 감은 머리를 드라이기 없이 말리고 요가 매트를 깔고 명상을 한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면 옥스나르Oxnar가 나타나 묻는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How are you feeling today?)"

옥스나르가 아침 인사를 하는 방식이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브런치 식탁에 앉을 시간이다.

옥스나르는 아내가 준비한 단출한 식탁에 초대된다. 아내가 요리 솜씨가 특별한 것이 아님에도 매번 옥스나르를 식탁에 초대하는 것은 아내가 한식, 혹은 이 로컬 마켓에서 구입 가능한 재료로 하는 모든 퓨전 음식을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는 그 모습 때문인 것 같다. 그가 비교적 우아하게 담아준 음식을 다 비워갈 때면 아내가 말한다.

"배에 아직 여유 공간이 있으면 더 먹어!"

그는 '물론이요!'라고 말하고 직접 냄비 속 음식을 덜어간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그에게 반한 아내가 다시 말한다.

"남은 야채밥을 모두 먹어도 좋아. 우리는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그럼 그는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한다.

"더 드시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비로소 냄비를 끌어당긴다.

이런 모습에 아내는 말한다.

"내가 먹는 것보다 더 내 배가 불러요."

그는 정원에서 일을 하다가 특이한 것이 발견되면 그것을 가지고 우리에게로 온다.

“이 녀석을 본 적이 있나요?”

이번에는 작은 도마뱀을 잡아왔다.

"이 선인장 정원에서 뜨거운 돌 위에서 놀거나 선인장 가시 위로도 잘 오르내리던 녀석이군."

"사막에 사는 도마뱀은 살아남기 위한 특별한 기능이 있데요.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해 비늘 모양의 피부를 가진 녀석도 있고 신장이 소변을 농축해서 물을 절약하고 체온조절을 위해 몸의 색깔을 바꾸기도 한데요. 낮에는 밝은색으로 햇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어두운색으로 바꾸는..."

정원 테이블의 유리 재떨이에 새순이 돋았다. 아내가 당근을 다듬으면서 자른 윗부분을 사용하지 않는 재떨이에 물을 담아 놓아두었던 것이다. 이 아열대에서 초록 순은 언제나 반갑다.

오후에 옥스나르 어머니, 재클린Jacqueline이 방문했다. 용기 하나를 아내에게 건넸다.

"제가 직접 만든 카피로타다(Capirotada)입니다. 빵과 시럽, 땅콩, 건포도, 계피, 정향, 코코넛, 시럽 그리고 치즈도 들어간 멕시코 고유의 디저트에요. 사순절에 만들어 먹는데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시럽은 그분의 피를 상징하고 각 재료 모두 의미가 있답니다."

붉은 석양은 아주 짧은 시간만 정원에 머문다. 곧 어둠이 내리고 각 나무 꼭대기마다에 새들이 찾아든다.

"새들은 해가 지면 왜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찾아들까요?"

꼭 답을 듣고 싶은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구태여 답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겠지요. 일찍 일어나야 벌레를 잡으니까요."

#느린여행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라파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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