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73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비통의 금요일
재의 수요일(2월 18일 Miércoles de Ceniza)부터 부활 전 토요일(4월 4일)까지 이어지는 올해의 오악사카 사순절(쿠아레스마, Cuaresma)에 함께 하고 있다. 오늘(3월 29일 일요일)은 종려주일(Domingo de Ramos)로 앞으로 일주일간을 일컫는 성주간(세마나 산타, Semana Santa)은 금식과 참회의 여러 의식이 절정에 달한다.
지난 금요일(3월 27일)은 '비통의 금요일(Viernes de Dolores 성주간 바로 전주 금요일)'로 성모 마리아(슬픔의 성모 Nuestra Señora de los Dolores / La Dolorosa)의 일곱 고난(7 dolores)을 묵상하며 꽃과 양초, 사진으로 장식된 '제단(altar)'을 집 앞, 교회, 시장 등 곳곳에 설치하고, 기도·찬가·촛불 미사·십자가 행렬로 성모를 기린다.
'슬픔의 성모 제단'과 십자가 행렬
아내와 나는 오악사카 시 북쪽의 소치밀코(Barrio de Xochimilco)를 방문했다. 18세기 산 펠리페 수도교(San Felipe Aqueduct)가 보존된, 오악사카의 오래된 이 마을에서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기념하는 여러 '슬픔의 성모 제단(Altar de Dolores)'을 만났다. 각 가정의 대문 앞, 혹은 시장 입구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제단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놓이고 성모 마리아의 고통과 참회를 상징하는 보라색 꽃으로 장식된다. 제단 위에는 발아시킨 밀(Trigo Germinado 어두운 곳에서 싹을 틔워 황금색을 띠는 밀은 생명의 빵, 예수를 상징), 색깔 있는 음료(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물이 든 유리병으로 성모 마리아가 흘린 눈물을 의미), 쓴 오렌지와 깃발(쓴맛의 오렌지는 고통을, 깃발은 희망과 부활의 상징) 등 여러 가지 상징물이 놓인다.
제단을 지키는 한 여성으로부터 '슬픔의 물(Agua de Dolores 성모 마리아의 눈물과 슬픔을 상징하는 붉은색 음료)'를 받아 마시고 해가 기우는 골목을 걸었다.
여러 명의 마리아를 기리는 십자가 행렬이 때때로 멈추어 기도하고 애도의 성가를 부르며 천천히 골목을 지났다. 완전히 어두워진 뒤 오악사카의 전통 지구로 최근에는 예술가들의 중심지로 변모한 할라틀라코(Barrio de Jalatlaco) 마을의 '성 마티아스 성당(Templo de San Matías Jalatlaco)'에 당도한 또다른 행렬을 만났다.
두 마을의 강렬한 색채와 현대적 기법의 표현으로 야외 갤러리의 역할을 하는 벽화들도 이 지역 주민들의 신앙이 반영된 내용이 많다.
다시 종려나무 잎을 들다
종려주일인 오늘 아침에는 다섯 곳의 성당을 방문하며 미사에 참여하고 각 거리의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오악사카의 중심광장인 소칼로(Zócalo) 앞 '승모승천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Oaxaca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앞으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종려나무 잎을 든 행렬이 지나갔다.
각 성당 앞에는 사흘 전부터 종려나무 잎을 엮어 성당에 가져갈 종려 잎 장식을 만드는 지역 장인들이 모였다. 긴 종려 잎을 손으로 접고 꼬아 십자가, 꽃, 물고기, 왕관 등 다양한 신앙적 상징물을 만들어 내는 전승된 기술에 탄복하며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십자가는 예수의 수난과 희생을, 꽃과 별 모양들은 환영과 기쁨을, 왕관은 승리와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상징물들은 종려주일에 성당에서 축복을 받은 뒤 가정에 걸어두어 보호와 축복을 기원한다.
대성당에서는 종려나무 잎을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예배를 인도하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더욱 높고 낭랑했다. 광장에서 온몸에 각종 상품을 걸치고 파는, 몸 자체가 좌판인 상인도 호객을 멈추고 성체 기도문에 집중했다.
지금은 통곡의 시간일지라도
"En verdad, es justo y necesario, es nuestro deber y salvación, darte gracias, siempre y en todo lugar, Señor, Padre santo, Dios todopoderoso, Señor nuestro,
el cual, siendo siempre inocente, fuiste injustamente condenado para salvar a los culpables,
muerte por nuestros delitos y, resucitando, conquistaste nuestra justificación.
Por eso te alabamos con todos los ángeles y te aclamamos con voces de júbilo, cantando.
실로, 주님을 항상 어디서나 감사드리는 것은 옳고도 필요하며, 우리의 의무이자 구원입니다.
거룩한 주 아버지,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며, 우리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죄가 없으셨으나,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당히 심판을 받으셨고,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부활하셔서 우리 의로움을 이루셨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의 소리로 주님을 칭송합니다."
호스텔로 돌아오자 막 청소를 마친 우리 방의 발코니가 보라색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다. 죄와 고통을 직면하는 시간을 일깨워 미사에서도 담담했던 가슴에 슬픔이 밀려왔다. 참회 없는 무도한 권력자의 침략 전쟁으로 그동안 구축해온 세계 질서는 힘을 잃고 있으며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미사일의 폭음과 함께 울부짖는 어머니들의 통곡이 보라색 리본에 투영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일곱 고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과연 갓 발아된 제단 위의 가냘픈 연둣빛 밀 싹이 황금빛 밀 이삭이 될 날은 언제일지.
●사진설명
-제단 위의 밀싹
마리아의 눈물과 함께 놓인 밀싹은 “지금은 고통의 시간일지라도, 결국은 풍성한 수확과 구원의 기쁨으로 이어진다"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전쟁 속에서 맞은 사순절
사순절은 본래 참회와 절제, 희망의 기다림을 상징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폭격과 총성 속에서 맞이하는 사순절에 참회보다 통곡이 깊다. 다시 종려나무 잎을 들 때다.
-마리아를 기리는 비통의 행렬.
소치밀코에서 여러 명의 마리아를 기리는 십자가 행렬을 만났다. 그리고 가정집 앞 제단 옆에서 마리아의 눈물을 상징하는 붉은 음료, Agua de Dolores를 받았다. 이를 마심으로써 성모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참회의 길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구즈만의 산토도밍고 성당(Templo de Santo Domingo de Guzmán)의 천장 장식
신앙 교육·도미니코 수도회의 권위·천상의 공간을 구현한 스투고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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