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0
가난과 1차 대전 징집을 면하기 위해 부모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졌던 한 이탈리아 이민자가 '큰 것(something big)'을 이루려고 했던 이를 만나기 위해 전철을 탔다. 우리가 내린 곳은 103rd St / Watts Towers Station. 역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던 '큰 것'이 멀리 보였다.
반대 방향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 지역의 특성을 물었다.
"저소득자들이 주로 사는 동네에요."
"당신도 이 동네에 살고있나요?"
그렇습니다. 30년간 이곳에 살고있어요."
"30년 전에는 어디에서 살았나요?"
"나는 30살이에요. 멕시코에서 이민 온 부모님이 이곳에서 나를 낳았고 이곳에서 자랐고 나도 이곳에서 5명의 가족과 살고 있어요."
"여전히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군요."
"아니요. 부모님이 여전히 이 동네 살기는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고 있어요."
"5명의 가족과 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여자친구가 낳은 내 아이 3명과 나를 만나기 전에 낳은 1명의 아이, 나까지 하면 5명이 아니라 6명의 한 가족이 살고 있군요."
"아~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모든 가족을 보살피려면 고된 일들을 마다할 수 없겠군요."
"지금 출근 중이에요. 주로 항공기 제작에 필요한 티타늄을 비롯한 금속을 가공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고된 일이에요."
이 철길은 경전철이 아니라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들이 오가던 곳이었다. 지금은 그때 사용되던 건널목 차단기는 들린 채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Watts 역사는 폐쇄되었다.
'큰 것'을 꿈꾸었던 그 남자는 1879년 이탈리아 Serino에서 태어나 15살에 미국으로 왔고고 42살이 된 1921년에 Watts로 왔다. 그때부터 그는 그의 집 마당에 타워를 짓기 시작했다. 33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그는 한 개인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건축물 Watts Towers를 만들었다. 그것이 이탈리아에서 Sabato Rodia로 태어나 미국에서 Simon Rodia가 된 그가 꿈꾸었던 '큰 것'이었다. 33년간의 집착이었던 남부 Los Angeles의 Watts Towers는 이제 미국인 거의 모두가 애정 하는 정말 '큰 것'이 되었다.
이 타워들은 17개의 주요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철로 뼈대를 만들고 모르타르를 바르고 깨진 타일 조각과 유리병들을 붙여 장식했다. 높은 두 탑의 높이가 30m나 되는 Watts Towers는 어떤 건축 장비를 사용하지도, 나사나 볼트를 사용하지도, 용접을 하지도 않았다. 철과 철사로 잇고 철망으로 감싸 모르타르를 입혔다. 비계를 세우거나 보조자가 없이 오직 홀로 망치, 끌, 양동이와 삽을 이용해 그의 몸으로만 만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차로 편도 2시간쯤 걸리는 말리부에서 타일공으로 일했다. 생업을 위한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이 탑을 만드는 일에 받쳤다. 퇴근 후 작업을 시작해 어두워진 시간까지, 그리고 휴일 시간을 모두 탑에 헌신했다. 탑이 완성된 1954년, 75살에 그 탑을 이웃사람에게 주고 홀연히 이곳을 떠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작업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답하곤 했다. "뭔가 큰 것을 하고 싶었어.(I wanted to do something big.)" 이웃들은 그가 천재이거나 미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는 도대체 장년의 모든 시간을 받친 이탑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설명들은 모두 '그것은 미스트리로 남았다'라고 했다. 그는 직접적인 질문에도 단지 추상적으로 답할 뿐이었다.
“왜 내가 탑을 만드냐고? 답할 수 없지. 그럼 왜 남자가 바지를 만들어? 왜 신발을 만들어?(Why I build it? I can’t tell you. Why a man make the pants? Why a man make the shoes?)” 그의 이 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풀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3일, 가이드 투어가 있는 날(수, 목, 금)에 맞추어 그곳을 찾았다. 탑을 돌면서 들은 설명을 통해 탑이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탑 꼭대기에는 천사가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있죠. 이것이 그가 이 탑을 만든 이유일까요? 모르겠어요. 저것은 그의 교회였습니다. 그는 오순절교회 목사였습니다. 그는 일요일에 사람들을 데려왔고 그들과 저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마치 굴뚝처럼 기능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교회 기능을 한 거죠. 안에는 분수대가 있고, 새 모이통이 있고, 그 안에 세례용 풀이 있습니다. 탑 자체는 축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재창조했던 거에요요. 그는 꽤 멋진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거죠.(In this tower there's an angel at the top of it. You see her doing this. This one why is you doing this? I don't know. That's simon's church. He was a pentecostal minister. He would bring people in on sundays and they and everything inside has a functional use like the chimney. He would do church there. There are water fountains. There are bird feeders. There's a baptismal pool inside. The towers themselves are a representation of a festival. So he's recreating things for himself to use and because he likes those things which is pretty cool.)"
그가 바랐던 '큰 것'은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탑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좀 더 다른 것, 좀 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던 그가 만든 '꽤 멋진 것'즉 축제 같은 교회를 하나님에게 받치고 싶었던 것 같다.
타일과 유리조각 모자이크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문명의 쓰레기가 배운 적이 없는 본능의 예술가를 만나 보석이 되었다. 1954년에 완성된 이 타워는 1959년 '국제박물관큐레이터컨퍼런스(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Museum Curators)'에서 20세기 미국민속예술분야에서 조각과 건축을 독창적으로 조합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발표되었으며 국립 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록되었다. 예술적, 공학적 독창성이 인정된 것이다.
와츠에는 낡은 캠핑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Black Lives Matter'패널도 있다. 이곳은 1965년 8월, 와츠 폭동(Watts Riots)이 있었던 곳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전자 Marquette Frye가 백인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 대원들에게 체포되었다. 말다툼이 이어지자 사건을 목격하기 위해 군중이 모이고 그동안 누적된 빈곤, 실업, 인종차별이 폭발해 폭력, 약탈, 방화가 6일동안 계속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이 출동해서 진압시킨킨 폭동으로 34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1,000채 이상의 건물이 파손되거나 파괴되었다. 전국적인 관심을 끈 이 폭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민권 운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봉기는 인종차별, 빈곤, 경찰의 만행 등 제도적 문제에 주목을 끌었다.
아내는 길바닥에 그려진 아이들 돌차기 놀이를 했다. 이 동네는 사이먼이 처음 이사 왔던 1921년이나 2023년의 오늘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가난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것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 부부는 와츠 타워의 가이드 투어를 받기 전에 Watts Towers Arts Center의 센터장인 로지 리 훅스(Rosie Lee Hooks)를 만났다.
"와츠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멋진 곳입니다. 이곳의 사망률만 하더라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역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외부의 사람들이 와츠에 대해 말하는 것들에 구애됨이 없이 우리가 가진 커뮤니티에 대한 대단히 긍정적인 생각과 환경들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왓츠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온 사이먼과 내가 이 마을 입구에서 만난 Mexican 등..."
"모두가 인간입니다. 하나의 인종. 단 하나!(All are human beings, one race, just one!)"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요?"
"기도를 많이 합니다. 나를 이용하라고, 나를 통해 말하라고요.(I pray a lot. Use me. Speak through me.)"
이탈리아 이민자 Simon이 예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큰 것'을 이루어낸 것처럼 가난하지만 함께 행복한 커뮤니티를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앨라배마에서 태어나서 플로리다와 워싱턴 DC에서 살다가 1977년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46년째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센터장께서 삶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Simon이 살아있다면 144살(1965년 7월 사망)이다. 이웃사람들에게 Sam으로 불리었던 그의 노년이 담긴 오래된 짧은 흑백 다큐를 보면 '세상이 어떤지(How the world was)'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반은 좋고 반은 좋지 않지. 음, 그것은 좋지 않군.(Good, good, good or bad, bad, bad... You be half good and half no good, well, that's no good.)" 이어서 말했다. "세상에서 결코 해보지 못한 일을 해야 해.(You got to do something they never got 'em in the world.)”
그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로지 할머니에게 물었다.
"여행자로 살고 있는 저희 부부는 어디를 지향해야 할까요?"
"내 생각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과 사물을 찾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I think you know it. you're on a journey to search and to experience people and things. I think you're on a journey where you need to be.)"
뒤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생각해 보니 그는 '천재이거나 미친 사람'이 아니라 '천재이면서 미친 사람'이었다.
-The Towers (1957) | Building The Watts Towers
https://youtu.be/kOPS5IWFQz0?si=-Sf_r89tsQBD5mrA
-official trailer of the film "I Build the Tower" the Watts Towers by Simon Rodia.
https://youtu.be/zaIloDyhg90?si=hM5VWTPlF2oC8DGW
#세계일주 #미국 #LA #WattsTowers #SimonRodia #와츠폭동 #모티프원 #인생학교 #헤이리예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