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뇌르마르크 『가짜 노동』

우리는 왜 쓸데없이 바쁜가

by motifnote


데니스 뇌르마르크의 『가짜 노동』을 읽으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일하고 있나?”. 아침부터 메신저가 울리고, 메일을 확인하고, 회의에 들어가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정리한 걸 다시 공유하고, 그걸 또 확인한다. 하루는 빈틈없이 채워진 것 같은데 집에 오면 남는 게 없다.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게 성취감은 없다.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도, 오늘을 잘 보냈다는 확신도 애매하다. 이 애매함이 가장 괴롭다. 분명 하루 종일 뭔가를 했는데 “그래서 뭐가 남았지?”라고 물으면 대답이 막힌다. 쉬운 질문인데도 대답이 안 나온다. 『가짜 노동』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찌른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바쁘다고 믿는 그 많은 일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일하는 척’에 가깝다고.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찔렸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반박이 점점 어려워졌다.




1.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가

『가짜 노동』에서 말하는 가짜 노동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하는 것이다. 필요 없는 보고서, 굳이 없어도 될 회의,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자료, 형식만 남은 업무 프로세스. 그리고 “일하고 있다는 티”를 내기 위한 행동들. 이걸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웃긴데, 웃기기만 하진 않았다. 너무 익숙해서다. 사실 우리도 안다. 이 일이 진짜 중요한지는, 이 회의가 꼭 필요한지는, 이 메일을 지금 보내야 하는지도. 근데 멈추질 못한다. 멈추면 게으른 사람 될까 봐, 뭔가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서, ‘바쁘다’는 상태가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바쁨은 일종의 방패다. “나 지금 너무 바빠”라는 말은 질문을 차단한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이게 정말 필요한지, 다른 방식은 없는지 묻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이 책은 그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고 말한다. 일을 위한 일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사회. 성과보다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조직. 뭔가를 계속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가짜 노동은 점점 늘어난다.


2. 생각할 시간을 빼앗는 가짜 노동

진짜 일은 고민이 필요하고, 멈춤이 필요하고, 판단이 필요하다. 근데 가짜 노동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하게 만든다.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 속에 가둔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많이 하는데 점점 생각을 안 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 정작 “이게 맞는 방향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오랜만에 떠올랐다. 질문을 안 한 게 아니라, 질문할 여유 자체가 없었다. 바쁘다는 말 뒤에는 묘한 안도가 숨어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 그냥 주어진 걸 처리하고 나면 오늘 하루는 통과했다는 느낌.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길수록, 일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사람은 점점 소진된다. 『가짜 노동』은 이 악순환을 아주 차분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보여준다.



3. 바쁜 사람은 유능해 보인다는 착각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바쁜 사람을 좋아한다. 바쁜 사람을 신뢰하고, 일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항상 메신저에 답이 빠르고, 일정이 꽉 차 있고, 회의가 연달아 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중요한 사람’처럼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환상을 부순다. 바쁨은 능력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유능한 사람은 일을 줄이는 사람일 수 있고, 회의를 없애는 사람일 수 있고, 쓸데없는 걸 과감히 버리는 사람일 수 있다. 근데 그런 사람은 조용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은 조용히 성과 내는 사람보다 계속 움직이는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한다. 이 구조 안에서 가짜 노동은 계속 늘어난다. 아무도 “이거 안 해도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말하는 순간,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될까 봐.


4. 성실함이 가짜 노동이 되는 순간

이 구조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건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다. 책임감 있는 사람, 맡은 일은 끝까지 하려는 사람, “이 정도는 내가 더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짜 노동은 그런 사람을 알아본다. 그리고 조용히 더 많은 일을 얹는다. 누군가는 “이거 굳이 안 해도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대신 그 일을 떠안는다. 그렇게 성실함은 효율이 아니라 희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일의 질이 좋아졌는지 조직이 건강해졌는지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저 사람은 늘 바쁘다”라는 이미지가 남을 뿐. 『가짜 노동』은 이 지점을 불편하게 건드린다. 우리가 자랑처럼 여겨온 성실함이 어쩌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 마음이 걸린다. 이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니까.





『가짜 노동』은 위로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너 열심히 살았어” 같은 말도 안 한다. 대신 묻는다. 이 일은 왜 하고 있나, 이 업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이 바쁨은 진짜 필요한가, 질문이 많아질수록 불편해진다. 근데 그 불편함이 정직하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당장 삶이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할 일은 많고, 회의도 있고, 메신저는 여전히 울린다. 다만 한 가지가 달라졌다. ‘이건 가짜 노동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다. 그 의심 하나가 생각보다 크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을 한 번 멈춰 보게 만들고, 당연하게 여기던 바쁨에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가짜 노동』은 일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해왔는데 이상하게 남는 게 없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바쁜데 공허한 사람, 성실한데 허탈한 사람, 퇴근하면 이유 없이 지친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 구조가 이상한 거다.” 그 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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