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샌드 『서툰 감정』

우리는 왜 자기 마음 앞에서만 서툴까?

by motifnote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서툰 감정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나서, 이 책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인사이드 아웃 2>는 더 노골적이었다. 기쁨만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 아니 정확히는 사람은 기쁨 하나로는 절대 자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라일리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짜증이 늘고, 분노가 커지고, 질투가 생기고, 불안이라는 감정이 아예 새로운 얼굴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처음부터 말썽이다. 통제하려 들수록 더 커지고, 밀어낼수록 더 시끄럽다. 보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완전 우리가 감정 대하는 방식이잖아.” 괜찮아 보이려고 애쓰고, 감정을 정리된 순서로만 느끼려고 하고, 넘치는 건 문제라고 규정해 버리는 태도. 영화는 아이의 감정을 보여주지만 사실 그 장면들 하나하나가 어른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듣는다. “짜증 내지 마.”, “화 좀 참아.”, “왜 그렇게 예민해.”, “질투하는 건 못난 거야.”,“불안해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 말들이 반복되다 보면 감정은 점점 두 종류로 나뉜다. 환영받는 감정과 숨겨야 하는 감정. 기쁨은 괜찮고, 슬픔은 적당히만, 분노와 질투와 불안은 되도록 빨리 정리해야 할 것들. 일자 샌드의 『서툰 감정』은 이 익숙한 구분부터 의심하게 만든다. 감정에 좋고 나쁨을 붙여온 건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인사이드 아웃>에서 분노, 짜증, 질투, 불안은 라일리를 망치려고 등장하지 않는다. 그 감정들은 언제나 이유를 들고 온다. 지켜주려고, 알려주려고, 멈추게 하려고. 이 책도 똑같은 말을 한다. 분노는 현실에 대한 오해에서 오고, 질투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가리키고, 슬픔은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이며, 불안은 위험 경고이거나 혹은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표시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문제는 이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감정을 보자마자 밀어내는 우리의 반응이다.



당신이 느끼는 특별한 감정과 당신을 분리하라.
그 감정에 굴복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그 감정에 저항하기를 원하는가.
선택권은 당신에게 있다.
p.28


감정이 최고로 강렬한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강렬한 감정은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어
처음 그 감정을 일으켰던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p.51


분노와 짜증은 당신에게 표현된
친밀감에 대한 방어 기제로서,
거의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자기 보호의 한 형태다.
p.61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불안을 어떻게든 제거하려다 오히려 라일리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불안만 사라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통제되지 않은 채 폭주했다. 『서툰 감정』을 읽으면서 이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쓴다. 느끼는 순간 약해질 것 같아서, 한 번 열어두면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괜히 삶이 더 복잡해질까 봐. 그래서 무시하고, 덮고, 논리로 눌러버린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살아.” 하지만 감정은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듯, 그리고 이 책이 말하듯 감정은 들리지 않으면 더 큰 소리로 돌아온다. 다른 방식으로, 더 불편한 모습으로.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여유 있게 수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p.66


당신이 누구인지 더 많이 보여줄수록
관계는 그만큼 깊어진다.
나를 드러내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p.96


슬픔의 강도가 줄어들지 않을 때는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울음으로 슬픔을 쏟아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p.106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감정을 해결하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없애라거나, 극복하라거나, 긍정적으로 바꿔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감정은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가 성장하는 순간은 기쁨이 다시 모든 걸 장악했을 때가 아니라 슬픔을 밀어내지 않았을 때였다. 슬픔을 느낀 채로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서툰 감정』도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라 감정 앞에서 덜 도망치는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서툴러도 괜찮고, 엉망이어도 괜찮고, 지금 느끼는 감정이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속 라일리가 더 또렷해졌다.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행복해지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허락하는 법이라는 걸. 기쁨 말고도 짜증, 분노, 질투, 불안까지 포함해서 그게 전부 나라는 걸 인정하는 일. 『서툰 감정』은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조금 늦었을지라도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에게 필요하다. <인사이드 아웃>이 아이를 위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른을 위한 영화였던 것처럼, 『서툰 감정』도 감정이 서툰 사람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서툴지 않은 척 살아온 사람을 위한 책 같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버텨온 사람,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참는 쪽을 선택해 온 사람, 자기 마음 앞에서는 늘 뒤늦었던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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