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권력이 될 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지는가
감독: 요로고스 란티모스
주연: 올리비아 콜맨, 레이첼 와이즈, 엠마 스톤
장르: 시대극, 블랙코미디, 드라마
국가: 미국
러닝타임: 119분
18세기 영국. 국정을 책임지기에는 지나치게 불안정한 여왕 앤은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에게 정치와 일상을 모두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몰락한 귀족 출신의 하녀 아비게일이 궁에 들어오고, 그녀는 점차 여왕의 관심과 애정을 차지하게 된다. 사라와 아비게일은 여왕의 총애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권력 싸움을 벌이게 되고, 사랑과 충성, 생존과 욕망이 얽힌 관계는 점점 잔혹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더 페이버릿〉은 처음부터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왜곡된 광각 렌즈, 과장된 몸짓과 말투, 불편한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들은 관객을 쉽게 편안하게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불편함은 연출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얼굴 때문이다. 화려한 시대극의 외피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은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선택받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타인을 밀어내는 방식까지. 이 영화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은 지금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그대로 비춘다.
특히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비틀린 형태로 다루기 때문이다. 〈더 페이버릿〉에서 사랑은 위안이자 무기이며, 동시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게 되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언제부터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변하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과연 명확하기는 한가.
여왕 앤에게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수많은 아이를 잃고, 정치적 무능과 신체적 고통 속에 갇힌 여왕에게 사랑은 ‘아직 내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을 주는 사람보다, 자신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매달린다. 사랑은 곧 권력이고, 선택은 생존의 문제다.
사라는 여왕을 가장 오래 이해해 온 인물이다. 그녀는 여왕에게 솔직하고,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이다. 하지만 그 진심은 여왕에게 위로가 아닌 통제로 느껴진다. 반면 아비게일은 여왕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상처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받고 싶은 여왕의 욕망을 정확히 연기한다. 이 차이는 결국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사랑이 얼마나 쉽게 ‘정서적 의존’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왕은 사랑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소비하는 존재가 되고, 그 사랑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아비게일의 변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잔혹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다시 추락하지 않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선택받는 경험은 그녀를 점점 변하게 만든다. 연약함을 계산하고, 타인의 상처를 이용하며, 결국에는 도덕적 선마저도 내려놓는다.
중요한 것은 아비게일의 타락이 개인의 탐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처한 환경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하고, 선택받지 못한 자에게는 퇴장을 명령한다. 이 궁정에서 윤리는 사치이고, 선함은 위험 요소다. 아비게일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조정하고, 결국 스스로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간다. 이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기준을 낮추고 타인의 욕망에 맞춰 살아가는가.
영화의 마지막, 아비게일은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 대신 공허함이 남아 있다. 여왕의 발을 주무르며 억지로 미소 짓는 장면은, 이 게임의 결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선택받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감옥에 들어왔다. 여왕 역시 다르지 않다. 수많은 토끼로 상징되는 상실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불안하다. 사랑을 가졌음에도,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을 쥔 사람도, 선택받은 사람도 모두 이 관계 안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더 페이버릿〉은 결국 말한다. 이 게임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으며, 사랑을 권력으로 바꾸는 순간 관계는 필연적으로 파괴된다고. 남는 것은 사랑도, 권력도 아닌, 서로를 소진시킨 흔적뿐이다.
〈더 페이버릿〉은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얼마나 쉽게 소유와 지배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선택받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도구로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 잔혹함이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관계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받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잃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남긴 자리에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게 되는가. 〈더 페이버릿〉은 화려한 시대극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영화다. 불편하지만, 그렇기에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