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친밀한 이방인』

거짓으로 만든 삶은 어디까지 진짜가 될 수 있을까

by motifnote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가 화제다. 타인의 삶을 훔치듯 살아가는 인물, 거짓으로 만들어진 정체성, 그리고 들킬지 모른다는 긴장감. 처음에는 자극적인 설정에 끌려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저 이야기가 완전히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보여지는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드라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단어가 있다. 리플리 증후군. 자신의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타인의 삶을 동경하다가 결국 거짓 정체성을 만들어 살아가는 심리 상태. 하지만 나는 이걸 단순한 병리 현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 속의 우리는 얼마나 진짜일까? 잘 나온 사진만 고르고, 성공한 순간만 기록하고, 상처와 실패는 조용히 지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편집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다만 어떤 사람은 그 경계를 조금 더 멀리 넘어갔을 뿐.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그 드라마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작품이 있다. 정한아의 『친밀한 이방인』. 이 소설은 수지 주연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안나>가 보다 극적인 전개와 빠른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원작 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훨씬 더 차갑고 집요하다.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단순히 ‘거짓말로 쌓아 올린 인생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이 소설은 거짓말 그 자체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묻는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 욕망,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불안. 그 감정들은 특별히 악하지도, 극단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무섭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거짓말은 잘못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친밀한 이방인』은 그 당연한 도덕적 판단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왜냐하면 인물의 욕망이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기 시작한 그 순간이 범죄의 시작이지만, 동시에 간절함의 시작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인물을 비난했다가, 또 여러 번 이해하게 됐다. 그 사이에서 내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경험을 했다.



제목인 ‘친밀한 이방인’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던 존재가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 혹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 낯선 존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 이 소설은 타인을 의심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SNS 속에서 이미 수많은 ‘다른 나’를 만들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더 예쁜 사진, 더 근사한 장소, 더 잘 나가는 모습들. 물론 그것이 범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친밀한 이방인』은 그 경계를 아주 날카롭게 보여준다. 거짓말은 어느 순간 스스로를 삼킨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돌아가기 어려워진다.


이 소설이 더 무서운 이유는, 주인공이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범한 욕망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다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됐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했던 순간들은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스스로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안나>가 보여주는 긴장감은 시각적으로 강렬하다. 반면 원작 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정적이다. 대신 더 깊다. 문장은 담담한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진다. 인물의 감정은 과장되지 않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읽고 나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보다 묘한 허무함이 남는다. <레이디 두아>와 닮은 점도 분명 있다. 타인의 삶을 욕망하고, 그 삶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심리. 그러나 『친밀한 이방인』은 단순한 도플갱어 서사나 미스터리 스릴러로 소비되기엔 아깝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인정 욕구와 성공 신화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한국문학이다. 특히 ‘성공한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시선까지 겹쳐지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한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진짜 모습 사이의 간극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 간극을 조심스럽게 관리하고, 어떤 사람은 그 틈을 넘어버린다.



『친밀한 이방인』은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거짓으로 만든 삶은 과연 어디까지 진짜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흐릿한 건 아닐까. 이 책은 단순히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로만 읽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정체성 소설, 심리 소설, 한국문학 추천 작품을 찾는 독자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읽고 나서 오래 남는 이야기. 『친밀한 이방인』은 그런 소설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 한동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사람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을까?” 아니, 더 정확히는. “나는, 내가 아는 내가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