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담백한 사랑이 가장 깊어지는 순간

by motifnote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 김용택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김용택 시인의 ‘사랑 시’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말할 때 거창한 비유를 끌어오고, 격정적인 언어를 쏟아내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김용택의 사랑 시는 다르다. 감정을 과장하지도, 일부러 숨기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써 내려간다. 그 담백함이 오히려 더 깊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오래 좋아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는 김용택 시인의 사랑 시를 모아놓은 시집이다.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설렜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만 모아둔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었다. 시 한 편 한 편이 이미 익숙한 듯하면서도, 다시 읽으면 또 다르게 스며든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단연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다. 이 시의 화자는 상대에게 묻는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너무 벅차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어조다. 여기에는 과장이 없다. 눈물도, 절규도, 거창한 고백도 없다. 그저 고요한 놀라움이 있다. 나는 이 담백한 놀라움이 좋다. 사랑을 이렇게 조용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를 읽고 나서 나는 알았다. 아, 이 사람은 이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구나. 그게 사랑이구나. 사랑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공유의 순간 속에 숨어 있다는 걸.

김용택 시인의 사랑 시는 늘 이렇게 일상에서 출발한다. 달, 바람, 꽃, 강물. 자연의 풍경을 빌려 감정을 건넨다. 그런데 그 풍경이 배경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가 된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에서도 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사랑의 매개이고, 마음을 건너는 다리다. 달빛은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이 시가 더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랑을 증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미래를 얼마나 계획하는지. 하지만 이 시는 그런 확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달을 보고, 그 사실을 전한다. 그 행동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이 시는 조용히 보여준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누군가는 큰 이벤트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매일같이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김용택이 말하는 사랑은 조금 다르다. 그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당신도 봤으면 하는 마음. 그 단순한 충동이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아닐까. 이 시를 여러 번 읽다 보면, ‘전화’라는 행위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직접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 목소리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숨소리와 떨림이 그대로 전달된다. 나는 이 시 속 전화를 상상하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상대가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달빛이 이미 둘 사이에 내려앉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달이 떴다고 전화해 본 적이 있을까. 혹은 그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을까.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연락 하나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는 읽을수록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김용택의 사랑 시는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기 경험을 꺼내놓게 된다. 나 역시 이 시를 읽으며 내 과거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괜히 밤하늘 사진을 찍어 보내던 순간, 별것 아닌 얘기를 길게 통화하던 시간들. 그때는 평범했지만, 지나고 보니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는 나에게 단순한 사랑 시가 아니다. 내가 사랑을 배웠던 순간들을 다시 꺼내보게 하는 책이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 얼마나 소박한 언어로도 충분한지 깨닫는다. 오히려 소박하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제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하지 않아서. 눈물겹지 않아서. 대신 오래 스며들어서. 달이 떴다는 사실 하나로도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의 조용한 연결. 그게 내가 믿고 싶은 사랑의 모습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괜히 창밖을 보게 된다. 혹시 오늘도 달이 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문득,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그 순간 나는 안다. 김용택의 사랑 시는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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