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나님, 기도 일기를 쓰기로 했어요.

내면의 나에게 쓰는 수행일기

by 김예림

안녕하세요 하나님,

오늘 문득 비 오는 거리를 걸어 집에 돌아오면서,

기도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널을 뛸 때마다 저는 누군가 감정을 알아주면 좋겠다. 꽁냥꽁냥 그랬구나 그랬구나 이야기를 나눠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번번이 그리움만 가득해지고, 털어놓은 마음이 상처로 돌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하는 여정을 반복하게 되더라고요. 그저 감정을 느끼고 나누는 것만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참 혹독한 일이에요.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으로 많은 걸 배우기도 해요. 배움은 챙기면서, 더 성숙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문득, 기도를 하며, 아! 하나님께 이런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안전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너무너무 신이 나더라고요:)


오늘은 선물을 많이 받았어요.


하늘의 별들도 풀꽃! 작품명, 꿈밭. 명의의 꿈을 가꾸는 공간에서 의대생 김 도생님 응원합니다.
서두르지 않기, 조급하지 않기, 나 자신을 믿기.

오늘, 헌신했던 곳의 임기를 마치고, 송별회를 나누고, 반짝반짝 빛나는 선물을 받았어요. 사람의 마음이 선물이더라고요.


이곳은 사람이 시리고 세상이 무섭던 시절에 들어가서 마치 인큐베이터를 만나듯, 환대와 존중을 배울 수 있었던 곳이에요. 제가 아끼는 분들을 초대해 함께 수학하기도 했던 곳이죠. 일 년 반동안 운영진으로 함께했는데, 사실은 무너진 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부족한 모습들을 하나씩 하나씩 받쳐주시며 함께 걷고, 작은 성취를 함께 축하해 주신 감사한 곳이었어요.


유학이야 제가 좋아 떠나는 거라지만, 저는 아직 이별이 참 슬퍼요. 다들 꼭 안아주시며 잘 해낼 거라 마음으로 응원을 나눠주셨는데, 왠지 헛헛한 마음에 집에 오는 길에 술을 한잔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잠시 떠올려 봤는데,

세상에. 술 한잔 가볍게 하자고 불러낼 사람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친구가 없어서라기보다, 이 감정을 또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감정을 짜내고, 그들의 공감을 받고 하는 것들이 왠지 내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중에 비가 왔고, 누구를 불러내긴, 그냥 혼자 한잔 할까 하면서 즐겨 찾던 바에 다다랐는데 왠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참 신기하죠. 정말 좋아하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운치도 있었을 텐데.


바 앞에 잠시 머물러 서 있어 봤어요.

“예림아, 정말 별로 안 내키니? 네가 좋아하는 곳이잖아. 좋아하는 음악도, 한잔 와인도 즐길 수 있어. “

내면의 나에게 묻는 동안, 집에 가서 수행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바라봤어요.


홀로 있는 충만함.

누군가 곁에 있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마음껏 홀로 수행할 수 있는 자유로움. 음악도, 술도 진짜 저를 채우는 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참 신기해요. 걷기 전엔 정말 꼭 한잔하고 싶었는데.


바에서 마저 걸어오는 길엔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어요. 그동안 받아왔던 수많은 사랑을 저는 제 마음이 좁고 편협해 제대로 감사하지도, 충분히 만끽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 충만하게 삶을 배우고 있는지.



오늘 유학길로 오르는 비행기표를 샀고, 이 비행기를 타고 유학길에 오르면 진정으로 홀로 있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돼요.


오늘 첫 기도 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따금씩 누군가에게라도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 하나님께 기도 일기를 써보려고 해요. 곁에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알렉스 그레이의 우주 빛 파동


오늘 사유한 52번 게이트


덧. 갑자기 떠오른 건데요, 하나님,

나이를 먹을수록 눈은 왜 나빠질까요? 다른 근육은 쓰면 쓸수록 느는데 망막 조리개를 조이는 근육은 힘을 잃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해요. 어쩌면, 정확하고 명확하게 모든 것을 정의 내리고 싶어 하는 에고가 허상이란 걸 알려주시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랬구나”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는 느슨하고 여유로운 지혜가 공존과 평화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느슨하게 보이는 시야로 눈 질끈 감고 그러려니 하는 지혜에 다가가고 있었는데, 돌연 라식 수술로 다시 어리석음에 가까워졌어요. 그러나 깨달은 라식인은 필요할 때 눈에 힘을 풀고, 존재의 빛을 느슨하지만 영롱하게 바라볼 수 있겠죠. 그럴 거라고 믿어요.


https://youtu.be/Sx5fDah4N_w?si=VWEyfjtUhyIsg3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