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게 착하지도 않았어요.
거기 계세요, 하나님?
부정적인 감정 수용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동안 제가 힘들고 괴로웠던 건,
"착한 나를 왜 몰라주지? 노력하고 있는 나를 왜 괴롭히지?" 하는 프레임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됐어요.
마음에 부딪치던 이야기들은 모두
"당신이 나를 괴롭혀"
"당신이 나를 힘들게 해"
"당신의 말이 너무 힘들어"
그리고 그 말이 너무나도 사실이었다는 것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죠.
혹자는 팩트로 사람을 때리는 게 가장 힘든 일이다라고 했는데, 그래서 저도 거기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사실이라면, 그게 상대를 위해 필요한 거라면, 나는 그냥 이야기할래>
<굳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둘래>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필요한 얘기를 가슴에 묻는 사람, 평화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 그냥 자기 마음이 편하고 싶은 사람. 존중해. 그런 사람에게 나는 독하고 못된 사람이야. 인정해.>
하나님, 저는 55번을 가진, 개혁과 혁명적 진화를 발동시키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현모양처를 바랐던 것이 바람보다 어려웠던 일인 것처럼, 제가 누군가에게 평화와 선한 영향력의 아이콘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제겐 아주 커다란 에고인 것 같아요.
그냥 인정합니다.
저는 못됐어요. 독해요.
없는 이야기, 허튼 이야기, 기분 맞추는 이야기 같은 거, 안 할래요.
그거, 남을 배려하는 것 같지만 내가 편하자고 하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정말 배려라 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다르고, 게다가 그 마음들을 다 표현해 주는 것도 아닌데, 저는 알 수 없는 마음들에까지 착하게 배려를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항복합니다.
저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존재도, 희생자도 아니에요.
저한테 괴롭다고 하는 이들의 휴먼디자인을 바라보니,
55번 유전자키와 짝을 이루는 39번이 보입니다. 기본 디자인에서 없더라도, 트랜싯에서 보이더라고요.
그러니 도발하고 서로 기존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각성하고, 맞는 혼인지 아닌지를 감별하며 직면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기 말이 맞다고 저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필요한 변화는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저를 믿고 제 발걸음을 걸어가기 위해서 피해야 할 내면의 명제는 "나는 착한 사람인데. 진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라는 프레임이고 괴로움의 근원이었어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찾고 싶어요. 그러나, 좋든 안 좋든, 그냥 제 길을 가고 싶어요.
제 길이 딱히 악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편하고 괴로운 말도 할 줄 아는 길이라면,
저는 좋아요. 괴로워하지 않고 좋다고 하기로 했습니다. 이걸 인정하고 나니 퍽 자유로워요.
누구든 "너 독하고 못됐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 나 독하고 못됐어.라고 인정할 수 있어요. 굳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찾은, 저를 위한 상대가 도발하는 친밀감과 진정성에 대한 도발의 면역항체입니다.
세종대왕 시기에는 허조가 있었고,
어제 들었던 동학인문학 수업에서는 제대로 알고 정확히 알아야 내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역사는 잘 몰라도 저는 잘 압니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괴로운 것보다, 내가 내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게 더 괴로워요.
39번은 끊임없이 도발하고, 자신의 도발에 쉽게 응하지 않는 올바른 혼을 찾는다고 합니다.
저는 39번을 끌어당기는 55번이니, 제가 도발에 쉽게 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요히 머물러 도발로 일어나는 지진 속에서 각성을 이끄는 55.5번으로 존재해야 해요.
더불어 누군가에 기대고, 의지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기대고 의지하고 함께하고 싶다고 갈망하지 않아도, 그런 존재들은 늘 곁에 있다는 것도. 딱히 없어도 큰 아쉬움이 없다는 것.
하나님, 저는 이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의 욕망으로 제가 저를 가스라이팅 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명상의 미덕은 사랑인데, 저는 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부터 그 사랑이 시작된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우주가 말하는 사랑은 있는 그대로, 혹은 될 일은 되는 무위의 사랑이라고 느껴져요.
앞으로도 제가 낫셀프 상태에서 저를 위한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해 주세요.
https://youtu.be/OeGSBRt8C4c?si=2ymlYqNYh2gITJ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