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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Jun 17. 2024

챗 GPT를 이기는 십자가

챗 GPT를 이기는 신앙

월요일입니다. 다른 때보다는 그래도 힘차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보니 신체적 접촉이 항상 거슬립니다. 신체적 접촉에는 항상 주의하고 다닙니다. 다행히 붐비는 구간이 몇 정거장 안되어 다행입니다.


하나님 오늘 삶의 현장에서 많은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빨리 처리해서 업무에서 자유함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퇴근할 때는 업무의 해방감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삶의 업무들을 빨리 처리해서 잘 헤쳐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삶의 현장에서 더디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물꼬가 터져 일정 내에 잘 마무리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삶의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갑자기 고등부 학생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자기 반에 6명이 밴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베이스 기타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이레로 친구가 버리는 기타가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밴드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는데 공부시간 줄어 부모님들이야 걱정하겠지만, 저는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 학생은 아직 기독교인이라고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식기도도 아직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자신 있게 십자가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33년까지 50% 복음화가 되는 기독교 국가가 되면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학생에게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시나브로 친구들에게 하나님은 믿는다고 고백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제 적어보겠습니다. 이제는 지식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챗 GPT가 서울대 학부생 다 모아놓은 지능보다 더 높은 지능이 되었습니다. 서울대가 크게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어떤 것을 목적을 갖고 사는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쓰신 고 이어령 선생님의 선견에 무릎을 칠 뿐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영성이 대세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시대입니다. 지성은 이제 끝났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지성을 영성을 통해 삶의 틈새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이제 관건입니다.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신앙은 방향성이 기반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만의 독창성 있는 신앙이 나옵니다. 그것만이 신앙이 기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이제 누구나 다 쉽게 접하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말씀 반석 위에 누가 독창성 있는 신앙 열매들을 맺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챗  GPT를 이기며 특한 신앙, 삶의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것을 해야 할까요?


방법 하나. 자기만의 은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잘하는 것, 옳은 것,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꾸준히 미치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은사를 통해 신앙생활을 함으로 말미암아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은사를 통해 하나님 영광을 위해 뛰다 보면 세상의 것들은 자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설사 세상의 것들이 따라오지 않더라고, 주님 위해 뛰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합니다. 허무하지 않습니다. 챗 GPT를 이용해 자기 은사를 결합시키면 세상을 향해 무서운 무기가 될 것입니다.


방법 두울.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미 말씀이 편만하게 자신의 지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말씀 기초 위에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찰나에 떠오르는 성령이 주시는  Insight를 붙들어야 합니다. 메마른 사막가운데 오아시스같이 떠오르는 영감을 잡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힐 때 챗 GPT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성령의 힘입니다. 자기 힘이 아닌, 챗 GPT의 능력이 아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으로 살아내면 그 삶은 거룩한 경쟁력으로 충만해집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방법 셋. 하나님 은혜, 능력은 흘러 보내야 합니다.

죽을 지경에서 남의 도움으로 살려냄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세상에 흘려보내 세상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마음이 다 사막으로 변해갑니다. 우울, 자해, 자살, 공포, 장애등으로 인해 세상은 가뭄에 논이 쩍쩍 갈라지듯이 메말라 갑니다. 논이 메마르니 그 안에 모들도 다 죽어갑니다. 쩍쩍 갈라진 논에 은혜의 물꼬를 터, 하나님 은혜를 흘러 보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기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남을 돌보는 사람은 챗 GPT를 이길 수 있습니다.


방법 넷.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소통이 있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자는 곧 하나님과 막힘없는 소통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에 절대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충만해졌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됩니다.


챗  GPT를 활용해 은사를 갖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뛰다 보면, 좋은 경제력, 좋은 배우자, 가정의 평화 등은 자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채워지게 됩니다. 다만 세상적 만족을 위해 하나님 기적, 은사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 모습은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뛰다 보면 나머지 세상 것들은 자연적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혼자 계속 기도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얀 양복과 하얀 구두를 신은 허스키 목소리의 목사님과 함께 지내자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간헐적으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렸다면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곳에서 거룩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세상에 펼쳐야 합니다.


교회안에서 찬양, 예배, 기도드리며 만족하는 신앙은 누구나 다 합니다. 무슬림은 우리보다 더 뜨겁습니다. 충만한 은혜를 받았으면 세상에서 그 은혜를 닳아질 때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그 모습이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의 태도입니다.


자기 업무, 글, 영상, 행동, 인격, 품격등을 세상에 내놓아야 합니다. 도덕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좋은 것과 신앙이 좋은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자기만의 은사를 발견해서 예수님의 제자 삶을 살아가면 챗 GPT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챗 GPT를 이길 수 있는 것까지 미리 준비하신 것에 찬양을 드립니다. 기술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챗  GPT를 이기는 길입니다. 물론 챗 GPT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말씀을 기반으로 챗  GPT를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인 생각만이 챗 GPT를 이깁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나 기술보다 중요힙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지혜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무리 인간에게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인간의 챗 GPT 보다 뛰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약해 보이는 순간에도 그 힘은 인간의 최고 강함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챗  GPT 활용을 바탕으로 인간의 지혜나 힘을 활용하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지만, 챗 GPT보다 강합니다.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와 능력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지혜롭습니다. 챗 GPT를 이기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소통이 됩니다. 소통된 상태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가면 챗 GPT을 넘어서는 훨씬 더 능력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인간의 지혜와 능력, 챗 GPT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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