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부서에 부탁하나를 했다. 그런데 1달이 지나도 아무런 처리 방향을 알 수 없다. 우연히 화장실 가다가 담당 직원을 만나다. 부탁한 업무 처리를 물어보니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열받았다. 그것이 아니면 다른 대체 방법을 강구했을 텐데 1달이나 불편하게 생활했다. 그 직원에게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 직원이 바빠서 자리를 피해서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이후에 나는 그 직원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온갖 화나는 것을 다 쏟아내고 싶은 글을 회사 메일로 작성했다. 보내기 버튼을 눌렀으면 서로 관계가 치명타가 될 정도의 강도 높은 글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계속 얼굴 보고 살아야 하는 사이다. 어쩔 수 없이 좋게 지내야 하는 사이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인공지능에게 최대한 글을 순화시켜서 작성해 줘라고 지시했다.
1초 만에 인공지능은 내가 딱 원하는 이메일 글을 쏟아냈다. 정중하고 품격 있어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매섭게 임팩트 있는 문구도 들어갔다. 내가 봐도 참 글이 품격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몇 글자 다듬은 후 그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퇴근 무렵이기에 회신이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10분도 안되어 바로 회신이 왔다.
죄송하다는 메일과 함께 바로 처리해 드리겠다는 약속이었다. 엎드려 절 받기라 그냥 무시하려고 한다. 내가 화 섞인 메일을 보냈다면 관계도 깨지고, 민원에 대한 처리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정중한 메일은 나를 품격이 있으면서도 논리적으로 보이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모두 그 메일 안에 담았다.
방금 인공지능을 이용해 문구를 수정 후 바로 회신 메일을 보냈다. 내가 봐도 정중한 글이다. 내가 쓰려면 저렇게 정중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 감정이 섞인 글들이 군데군데 묻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감정을 정제한 채 따뜻한 회신 메일을 보내니 관계가 어색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오히려 따뜻함을 주는 면도 있다.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곤란하지만, 적당히 이용하는 것은 현명한 삶의 방법이다.
2년간 쓴 글들을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내가 쓴 글은 인기가 없나 보다. 손봐야 할 곳이 너무 많으니 글이 거칠다. 내 글은 날카롭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간택해 줄지 모르겠다. 최소한 전자책이라도 만들 것이기에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브런치에도 기록을 남겨놓았으니 미련은 없다.
그래도 종이책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