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는 육체적인 해결을, 인공지능은 정신적인 해결을
손끝으로 느끼는 기술의 다정함
키보드는 물리적인 보조장치이고 인공지능은 정신적인 보조장치다.
키보드를 샀다. 어느덧 ‘직업병’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모니터와 그 앞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익숙해진 일상이라 생각해 통증은 무시하고 살았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팔목의 통증은 몸이 보내는 작은 경고였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팔목 보호에 좋다는 로지텍 키보드를 새로 입양했다. 기쁨의 순간이다. 촉감이 참 좋다. 자꾸 뭔가를 쓰고 싶어진다.
새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순간,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깊은 만족감이 전해졌다. 예전처럼 힘주어 꾹꾹 누르지 않아도 입력이 쉽다. 가볍게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 글자가 매끄럽게 입력된다. 스치기만 해도 글자가 날아간다. 팔목을 공중에 띄워 긴장시킬 필요 없이 바닥에 편안하게 지지한 채 사용한다. 손끝의 움직임만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은 도구 하나가 주는 입력감의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우리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은 단순히 빠르고 화려해지는 것을 넘어 이제 인간의 약한 부분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팔목의 통증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의 다정함이다. 건강과 경제적 여유만 뒷받침된다면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그야말로 편리함의 정점에 선 시대다.
하지만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생활은 이토록 안락해지는데, 정작 우리의 몸은 갈수록 나약해지는 것만 같다.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 힘든 일을 해주는 만큼, 우리는 근력을 잃어가고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통증을 느낀다. 도구는 진화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는 듯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편리해진 세상만큼이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어제의 기술이 오늘의 구식이 된다. 새로운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배움의 속도는 더뎌지는데 세상의 변화는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간다.
지능의 도구인 AI 함대를 띄운다. 정보의 홍수를 헤쳐갈 함대를 띄워야 한다. 지능의 도구인 AI와 함께 파도를 넘어야 한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와 배움의 압박 속에서 나는 AI 도구를 떠올린다. 이 키보드가 나의 팔목 통증을 덜어주는 '물리적 보조장치'다. 인공지능(AI)은 나날이 늘어가는 배움의 숙제를 해결해 줄 '지적인 보조장치'다.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이 영리한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해 보기로 한다.
먼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보의 선별부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다. AI에게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를 묻는다. 방대한 자료 중 핵심만을 요약하게 한다. 무작정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대신, AI라는 필터를 통해 나에게 꼭 필요한 맑은 물만 걸러내는 과정이다. 최종 병원에서 내 몸의 정확한 진단을 찾아 약을 처방하듯이 인공지능도 나에게 꼭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AI 가 좋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다음은 맞춤형 학습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AI에게 나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때로는 아주 쉬운 비유로, 때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나만의 개인 튜터처럼 활용한다. 두꺼운 매뉴얼을 붙잡고 씨름하던 시간은 줄어들고, 핵심 원리를 이해하는 즐거움은 커진다.
마지막으로 실시간 해결의 단계다. 완벽히 배운 뒤에 시작하려 하면 이미 늦다. 무언가를 실행하다 막히는 순간, AI에게 즉시 질문하고 답을 얻으며 '실행하며 배우는(Learning by doing)' 방식을 택한다. 이는 마치 새 키보드에 적응하듯, 자연스럽게 기술과 지식을 내 몸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도구의 진화는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게 해 준다. 키보드가 통증을 줄여 글쓰기의 즐거움을 되찾아주었다. AI는 학습의 고단함을 덜어주어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호기심을 지켜준다.
비록 몸은 조금씩 약해지고 세상은 복잡해질지라도, 내 곁의 다정한 도구들을 믿고 한 걸음 더 내디뎌본다. 오늘도 기분 좋은 타건음과 함께 AI가 정리해 준 오늘의 배움을 가볍게 훑어본다. 좋아진 세상이란 결국 인간이 도구의 주인이 되어 더 넓은 자유를 누리는 세상임을 다시금 느낀다. 인간이 편리해져 행복해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최종 목적일 것이다. 잡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남는 시간에 좀 더 인간의 본질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준 도구가 인공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