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님이 로마서 강해를 하신다. 말씀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앉는다. 각 장별로 말씀을 나만의 글로 남겨서 로마서를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로마서를 언급한다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글로 적어놓아야 자세히 읽고 오래 기억하기에 용기 내 적어본다.
로마서 2장의 핵심 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유대인의 종교적 특권이나 이방인의 무지함 모두 핑계가 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오직 행함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남을 정죄하는 유대인을 질책하신다. 남을 정죄하는 자의 위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알아본다는 것은 스스로 도덕적 잣대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악을 분별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는 마음속으로 같은 죄를 짓고 있다면 그 잣대는 곧 자신을 향한 정죄의 무기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재판관 행세를 할 수 없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심판을 받지 않고 잘 사는 이유가 하나님께 선택받았기 때문이라고 착각했다. 바울은 유대인이 심판받지 않고 잘 사는 이유가 하나님이 그들이 회개할 때까지 길이 참아주신다고 말한다.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의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를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를 갖고 계신다. 심판의 유일한 기준은 행위이다. 선을 행하며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신다. 하나님은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로 갚으신다. 바울은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요점은 너희가 정말 율법을 가졌고 하나님을 안다면, 그 증거가 삶의 열매(행위)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반드시 삶의 행위로 증명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심판과 축복에 있어서 혈통이나 신분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외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인 인종, 국적, 학력, 재산, 종교적 배경을 뜻한다. 유대인이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된다. 유대인이 축복도 먼저 받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말씀을 맡았기 때문이다. 특권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심판의 기준은 율법과 양심이다. 이방인은 율법(모세 오경, 말씀)을 모른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들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울은 명확히 선을 긋는다. 율법을 아는 것(듣는 것) 자체가 구원의 부적이 될 수 없다. 오직 그 율법대로 살아내는 자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 그렇다면 율법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방인들은 무엇으로 심판을 받을까? 바로 양심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도덕률(양심)을 심어두셨다.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의 은밀한 것(마음속 동기와 생각)이 드러난다. 그때 율법 없는 이방인들은 양심 자체가 그들을 고발하거나 변명하는 법정의 증거가 된다.
한편 하나님은 언행불일치를 질책하신다. 유대인의 종교적 위선을 고발하신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스스로 부여한 화려한 타이틀을 나열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의 지식을 가졌때문에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자부했다. 2장 17~24절은 유대인들의 극심한 영적 교만을 보여준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특권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그 특권이 요구하는 책임감은 망각했다. 바울의 날카로운 반문이 시작된다. "도둑질하지 말라면서 너는 왜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면서 너는 왜 간음하느냐?" 가르침과 삶이 철저히 괴리된 종교인의 위선을 폭로한다.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24절이다. 믿는 자들의 위선적인 삶 때문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방인)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게 된다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기독교인인 나한테도 매우 무겁게 다가오는 구절이다. 부족한 나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음이 무거워져 더 진지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된다.
참된 율법은 형식주의가 아닌 내면의 할례다. 유대인 정체성의 최고 상징은 할례다. 유대인들은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구원이 보장된다고 믿었다. 바울은 할례의 가치를 전복시킨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할례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라도 율법의 본질을 지키며 산다면 그가 진정한 할례 자다. 의식이 삶을 대체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로마서 2장에서 진짜 유대인(하나님의 백성)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이다.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은 혈통, 가문, 종교적 의식(세례, 직분 등)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니다. 내면적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 열매를 맺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이다.
마음의 할례는 육체의 가죽을 베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악, 교만, 이기심을 성령의 은혜로 도려내는 것(마음의 할례)이 진짜 신앙이다. 표면적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 내면적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구한다. 외모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가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되길 원한다. 내 부족함을 하나님께 조용히 조용히 용서를 구한다.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을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따뜻한 성품을 가진 자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