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밴드 영화기 (1) - 정글스토리
‘보헤미안 랩소디’의 기세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19년 새해를 맞아 이제는 관객 수 천만을 향하고 있다. 방송국에서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공연 실황을 재방송, 재해설 하는가 하면, 거리의 상점, 음식점에서는 퀸의 노래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퀸의 나라인 영국을 제치며 수익을 내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밴드음악에 호의적인 나라는 아니다.미국을 중심으로 락큰롤 계열의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인 1960, 70년대에 우리나라는 ‘新단발령’을 시행하고 있었고, 음악하는 사람을 여전히 ‘딴따라’라고 불렀으며, 밴드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오부리’로 비하하기 일쑤였다. 우루루 몰려다니며 불량한 짓거리나 하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밴드’ 또는 ‘그룹사운드’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방송가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도 두발이 긴 가수는 출연이 금지당하거나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올 것을 요청받았으며, 기획사에서도 밴드의 인원에 따른 수익 구조의 불리함 때문에 이들을 쉽게 키워내지 못했다.
락 음악을 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을 지겹게 따라온 가난을 훈장처럼 생각하고 락 발라드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이를 배신자로 여기곤 했다. 밴드에서 독립하여 솔로 가수로 인기를 얻어도 반짝 스타에 그쳤으며 예능 프로그램에라도 등장할 테면 돈에 영혼을 팔았다며 손가락질 했다. 그만큼 락 음악을 천시하고 멸시했던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개봉 한 지 두 달이 넘은 락 밴드 영화는 메가히트를 기록 중이고 퀸의 열풍이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다. 영화관에서 퀸의 노래를 합창하며 너도 나도 퀸의 베스트 앨범을 다운받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 때 퀸의 음악이 전파를 타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려 합병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릇된 성의식을 가진 사람이 부른 노래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치부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 대중들은 에이즈가 어떠한 병인지, 또 그들이 사랑한 음악과 프레디 머큐리의 병을 연관짓는 일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 잘 알게 되었다.무엇보다 작금의 기현상은 퀸의 음악을 사랑한 이들이, 또는 퀸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는 이들이 중년이 되어 삶의 질곡을 지나고 있을 때 자신의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2시간 가량 잠시 추억에 빠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으며 이것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주목할 만 하다.
*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1990년대 중반에 밴드를 다룬 영화가 제작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으며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에서 <서편제>를 포함한 4편의 조연출을 맡았던 김홍준 감독의 <정글스토리>다. 영화의 배경을 위해 김감독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필요할 것 같다. 김홍준 감독은 영화 잡지에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평론을 기고한 적이 있으며, MBC 라디오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여 남다른 음악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바가 있다(후에 ‘이주연의 영화음악’에도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김감독이 처음 연출한 작품은 <장미빛 인생>이다. 본인이 초보 감독이었기에 촬영, 사운드, 편집 등의 각 분야에서는 숙련된 스태프들과 함께했고 연기도 최재성, 최명길 등 검증된 베테랑들에게 맡겼다. 감독 본인을 제외한 유일한 이 업계 초보가 바로 음악감독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바로 듀오 ‘어떤 날’의 조동익이었다. <장미빛 인생>의 OST는 숨은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데뷔작을 발판으로 김홍준 감독이 2년 뒤에 발표한 작품이 <정글스토리>이다. 문민정부의 등장과 경제 성장으로 인한 문화의 부흥기를 예감한 삼성, SK 등의 대기업은 이 시기에 영화, 음반 등의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정글스토리>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원소스 멀티유즈의 개념으로 한 편의 영화로 음반과 관련 이벤트 등을 함께 상품화하기 위해 기획한 작품이다. 김감독은 음악평론가 강헌씨와 밴드 관련 영화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음악감독을 섭외하던 중 강헌씨와 한 때 가수-매니저 관계였던 신해철씨에게 영화음악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신해철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혜성같이 등장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기 가수였는데 일련의 사건으로 부침을 겪은 후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원류인 밴드로 바꾼 상태였다. 신해철은 이전에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영화음악을 맡은 바가 있었는데 <정글스토리> 앨범에서는 보다 하드하고 날카로운 시선의 락 음악을 선보이며 이 앨범을 명반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이제 이렇게 영화얘기보다는 음반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를 설명해야할 때다. 밴드를 하고 싶어하는 한 젊은이의 분투와 실패기를 담은 이 영화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락 음악을 하는 이들이 받아온 천시만큼이나 외면 당했다. 이 영화로 김홍준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2편으로 마무리 해야 했다. 이 영화로 남은 것은 신해철의 <정글스토리> 앨범뿐이다. 매니아 들은 시나위, 몽키헤드, 넥스트 등의 밴드를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 자체로도 환호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신인 가수인 윤도현과 이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산울림 김창완의 어색한 연기도 안타까웠지만 그즈음 영화계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점이 가장 아쉽다. 당시는 경제 호황의 이면으로 각박해진 사회상을 비틀고자 <투캅스>, <마누라죽이기> 등의 코미디물이 많이 제작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국내음악계에서는 대중들의 넓어진 문화포용력 덕에 신성우, 김종서 등의 락 가수가 인기를 얻었지만 <정글스토리>는 그 조그만 혜택도 얻지 못했다.잠시 숨을 고른 뒤, 2001년에 임순례 감독이 <정글스토리>의 바통을 이어받아 비슷한 플롯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로 다시 한 번 밴드 영화에 도전했는데 흥행에는 역시 실패했으나 많은 이들이 수작으로 꼽고 있다. <정글스토리>의 순수했던 도전은 영화내용처럼 실패로 돌아갔지만 또 다른 밀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표지 그림 출처 : pinter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