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밴드 영화기 (3) - love & mercy
데뷔 앨범으로 메가 히트를 기록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보는 밴드가 있다. 아마도 밴드의 이름 때문일 탓이 가장 커 보인다. ‘비틀즈’가 한 때 라이벌로 생각했던 ‘비치 보이스’다. ‘비치 보이스’는 ‘Surfin’ USA’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들이 말랑말랑한 서핑 음악만을 하는 밴드라고 여기고 있다. ‘비틀즈’의 초기와 비슷하게 보이 밴드의 느낌이 강했던 그들은 초창기에는 서핑 음악을 주로 했다. ‘도어즈’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멤버들의 목소리를 쌓고 쌓아 화음을 만들었고 누구나 부담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명반 ‘Pet sounds’를 계기로 그들은 음악적 색깔을 바꾸었고 지금은 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분류되고 있다. 영화 <러브 앤 머시>는 ‘비치 보이스’의 핵심 멤버인 브라이언 윌슨이라는 한 인간의 오랜 침잠과 회귀의 희망을 묵묵히 그린다.
영화는 젊은 시절과 중년의 브라이언을 교차 편집하여 등장시킨다. 영화 속 젊은 시절의 브라이언은 외모부터 소품까지 실제 옛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아버지와의 비뚤어진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비틀즈의 ‘Rubber soul’ 보다 뛰어난 음반을 만들지 못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자괴감이 합쳐져 브라이언은 마음의 심연으로 침몰해간다. 강박과 집착으로 약에 빠져버린 브라이언은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무기력증에 빠져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신세가 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는 비틀거리는 브라이언의 시점이자 자유롭게 숨쉬지 못하고 갇혀버린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반면, 중년의 브라이언은 젊은 시절의 그에 비해 톤이 다르다. 그는 무기력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같이 보인다. 자신감은 물론이거니와 발음도 어눌하고 무언가에 계속 쫓기고 감시받고 있다.행동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다. 그가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이는 랜디 박사로 그는 브라이언의 정신상태를 이용해 음반 저작권료를 빼돌리고 있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결정권과 부를 빼앗긴 브라이언은 중년이 되어서도 똑 같은 신세였다. 브라이언이 자동차를 사러갔다가 알게된 딜러 멜린다는 그와 랜디 간의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그들은 점차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멜린다가 이 관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명확하지는 않다. 딜러인 멜린다가 계속 차를 팔고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브라이언 보다는 랜디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며 정상적이지 않아보이는 브라이언을 위해 멜린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에 휘말리는 전개가 다소 부자연스럽다.그녀의 태도가 러브인지 머시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어린이 동화의 못된 괴물로부터 핍박받는 공주를 구하는 왕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감독이 가장 공들였을 것으로 누구나 확신할 수 있는 씬은 침대위의 브라이언을 천장의 브라이언이 바라보는 장면일 것이다.침대 위의 어린 시절의 브라이언을 젊은 시절의 브라이언이 천장에서 바라보고 다시 침대 위의 젊은 브라이언을 중년의 브라이언이 바라본다. 예수가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여 자신의 빈 무덤을 찾은 것과 같이 브라이언은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상처와 학대로 정신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마주대하고 부활한다. 예수의 빈 무덤처럼 브라이언의 침대와 천장은 하얗고 파도가 치는 침실 밖 해변의 파도는 죄 사함의 물과 같다. 브라이언은 이집트 파라로와 같은 랜디 박사의 학대와 착취로부터 모세 멜린다를 만나 출애굽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브라이언 윌슨의 실제 인생을 그렸다는데에 있다.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현재의 브라이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으며 담담하게 ‘러브 앤 머시’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그의 역작 ‘pet sounds’는 대중에게는 외면 받았으나 비평가들에게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따라 잡고 싶었던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는 ‘pet sounds’를 극찬했으며 ‘비틀즈’는 이 음반을 뛰어넘기 위해 혁신적인 사운드를 도입하여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라는 대중음반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어냈으니 창작자에게는 고통과 영감이 공존했고 대중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일이었다. 영화와 동명의 음악인 ‘러브 앤 머시’는 ‘pet sounds’ 이후 브라이언의 고통으로 20여년간 사장될 수 밖에 없었던 음반인 ‘smile’에 수록된 곡으로 그가 멜린다에게 바치는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