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저는 혼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났고, 그곳은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볕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던 그런 곳이었는데, 저는 그 안에서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백팩을 메고 앞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그러다 이내 뒤로 돌아, 또 앞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아마 그 숲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꽤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나뭇잎을 세아리다가, 약간 젖은 땅 위에 조용히 앉았다가, 엉덩이를 털고 다시 걷다가, 나무들의 밑동에 자란 버섯들과 작은 벌레들을 유심히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부터 누군가가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곳은 저를 제외하면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던 공간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곳에 갔던 것이었므로 그 상황이 잠시 동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적막한 이 나만의 세계를 침범하는 훼방꾼 같아서 조금 불쾌했다가 돌연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모습에 조금 반가움을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사람에게 반가움을 느낀 적은 아직까진 그때가 유일무이했던 경험이어서, 이 새벽에 갑작스레 그때의 일을 기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를 발견하고도 그는 한참 동안 제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그의 옷차림이나 외모를 전부 파악하고 났을 때쯤에야 그는 저를 보고서는 화들짝 놀랐고 그가 제게 처음 한 말은, "제가 시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였는데 저로서는 그 첫마디에 이성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앉을 곳을 찾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그럴듯한 자리가 있어서 그와 마주 앉았고 그는 조금 어색한듯했지만 저는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알아채지 못하게 조금 더 그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꽤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걸었고, 아까 혼자 그랬듯 함께 뒤돌아 걷다가, 종종 좌우를 바꿔 걸으며 대화하다가 비슷한 타이밍에 대화를 멈추곤 숲을 바라보다가 이내 또 걸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시답잖은 대화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가령 이름이라던지 나이라던지 어디서 왔고 뭘 하는 사람인지 같은 질문이 없는, 자신의 감정과 숲에 대한 감상, 그리고 그는 숲에 대해 잘 아는 듯했습니다. 나무들의 이름과 그 숲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 제겐 너무나 만족스럽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정말 오랜만의 이상적인 대화였습니다.
저는 문득 그와 이 숲 안에서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정말 불편한 감정이었습니다.
기대와 욕심, 집착과 실망 끝에 결국 또 한 번의 공허함이 연이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 숲에서 저는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다만 언제까지고 그 숲에서 그와 함께일 순 없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은 이기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고 저는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를 갈망하는 마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와 작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 결심 이전에 저울질을 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의 틀림없을 행복과, 그가 떠난 후 제가 느낄 아쉬움 중 어떤 것이 더 무거울지에 대해 생각하고는 결국 후자일 것이 분명하므로 아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행복을 갖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 모든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저는 그와 자연스러운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의 쾌활한 뒷모습이 그땐 조금 야속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있지 않았던 것과 있던 것이 없어진 것에 대해 그 숲에서 한참을 사유했습니다. 제게 더 이상 그 숲은 울창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가 떠난 숲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화가 났는데, 그러면서 왜 웃음도 났던 건진 모르겠습니다.
그 숲에서, 저와 마주 앉았던 그의 자리에서, 저는 오랜 시간을 홀로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하릴없이 그 숲에서 나왔고 저는 꽤 헤맨 후에 도로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헤맸던 이유는 비단 어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