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건 울타리 없이 양들을 키우는 것과 같아서 그럴 때 대체로 글을 쓰게 됩니다. 한 글자씩 꾹꾹 누르고 문장으로 엮어서 양들이 멀리 가지 못하게 단단히 고정시켜 놓는데 이곳은 한적한 곳이어서 심미적으로든 기능적으로든 뛰어난 울타리를 만들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기분이 드는 건 아직 제게 허영심이 가득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울함만이 양의 모습을 띄는 건 아닙니다. 다양한 감정들이 미묘하게 다른 모습으로 들판을 거닐고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그저 나무 밑에 앉아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일뿐이라, 꽤나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재밌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한 마리 한 마리를 자세히 관찰하며 마치 제가 그 양이된 듯 그들에게 과몰입하게 되고, 그들의 생김새는 같은 듯 모두 달라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서글퍼지곤 합니다. 이렇듯 저를 조종하는 건 결국 제 자신이며 양들은 그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울타리를 세우며 깨닫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양들을 축사로 몰아야겠습니다. 어두운 밤에 양들을 풀어놓는 건 저한테도 꽤나 위험한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