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by 모토


벽에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수성페인트를 조금 따르고 스펀지 롤러에 살짝 묻힌 뒤 팔레트에 몇 번 굴리고 거뭇한 부분들을 찾아가며 조심스레 바르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맡는 수성페인트의 꼬릿한 냄새에서 왠지 아득한 기분이 들어 잠시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따금씩 벽을 백색으로 칠할 때면 처음엔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롤러를 문지르면서, 하얘지는 벽을 보며 뿌듯해하고 마치 벽뿐만이 아니라 제 모든 것이 하얗게 되는 것 같은 착각도 하며 어떨 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데, 그러다 이내 엄지손가락 부근이나 손바닥과 손목 사이가 저려오고, 처음과는 다르게 이 정도까지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며 귀찮음은 피곤함으로 피곤함은 합리화를 머금은 포기로 이어집니다.


문득 페인트를 칠하는 일은 연애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제 방은 하얘질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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